(6) 줏대 확실한 충청도식 대화법

“아니 충청도 사람들 왜 그래….”

옛날 근무하던 직장에 인사차 잠깐 들르니 선배님이 충청도에서 온 나를 보자 생각난 듯 얼마 전 주말여행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신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때 되면 시골 식당에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올라올 계획이었단다. 충청도 땅에 들어서 점심때가 되어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국도변 식당엘 들어갔다. 벽에는 열 두어 가지의 메뉴가 붙어 있었다. 제일 쉽게 맨 앞에 붙어 있는 것으로 정했다.

“버섯전골 주세요.”

“… 그거 안 되는 디유….”

주문 받으러 온 주인 아저씨가 겸연쩍어 했다.

“그래요? 그러면 그 다음 거 좋겠네. 두부전골로 하죠. 2인분 주세요.”

“… 그것두… 안 되는 디유….”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나기 마련.

“원 참. 아니, 안 되는 건 뭐 하러 써 붙여 놨어요?”

다음 말이 걸작이다. 주인장 하는 말.

“그냥유….”

‘그냥’이란다.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거의 포기 상태로 인내심을 발휘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되는 게 뭐 있어요?”

그런데 또 한 번 일격을 가한다.

“… 뭐가 잡숫구 싶으신디유?”

속 터진다. 여태까지 말했잖아!

선배님은 “하여튼 충청도 사람들 알아줘야 해”하며 나를 놀린다. 그런데 사실은 선배도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이다. 그려, 그게 충청도여…. 우리는 너무나 공감이 되어 한참 웃었다.

시골로 내려와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서울생활에 길든 내가 이곳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법부터 표현하는 방법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오해도 많았다. 이렇게 말해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원한 건 그게 아니란다. 나는 일껏 생각해준다고 한 말에 화를 내며 덤벼든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에 서운하단다. 그들을 이해하고 척 하면 척으로 받아치게 되는 데에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동네 어른 몇 분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려고 읍내 식당엘 갔다.

“뭐 드시겠어요?”

“아무거나 먹지 뭐.”

“그래도… 뭐 좋아하세요?”

“그냥 알아서 시켜.”

어른들은 굳이 내 마음대로 결정하라 하신다.

“알았어요. 갈비탕 어때요? 괜찮아요?”

“그러지 뭐….”

“여기 갈비탕 넷 주세요.”

여기서 끝나면 충청도 아니다. 주문 받고 종업원 막 돌아서려는데 한 마디 하신다.

“이 집 그거 별룬디….”

으악!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니고… 속내를 가늠하기 힘든 이런 표현법을 다른 지방 사람들은 ‘줏대 없고 음흉하다’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줏대가 너무나 확실하다. 아무리 바깥에서 폭풍우가 쳐도 속에 잡고 있는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 “뭐 먹고 싶냐?” 한 번 더 물어주는 것도 듣는 사람은 속 터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마음대로가 아닌 당신 뜻에 따라 해줄 수 있는 데까지는 해주겠다’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의 성의 표시이다.

나는 이제 이런 대화에 당황하지 않는다. 아니 이 단수 높은 충청도식 대화법을 즐긴다. 아마 지금쯤 나도 닮아가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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