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줌마는 버스보다 빨리 뛴다는 광고에서처럼 나날이 대단해져 가는 아줌마들의 위세에 눌려 사회적 ‘은따’가 되었을망정 감히 시비를 걸 수도 없는 ‘아줌마’들의 위력을 난 어머니라는 지위가 주는 막강 권력에서 찾아본 적이 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아줌마는 ‘神’ 다음의 자리인 ‘어머니’인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분이라도 얘기 중에 어머니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짓게 하는 그 대단한 위치에 한 발씩 다리를 넣고 있는 우리 어머니들은 그래서 사실 잘난 남편들보다 힘이 세고 어떤 조폭보다 배짱이 있다. 영원한 추종자가 있으니까. 영원하다는 것만큼 강한 힘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산아제한 시절을 지나며 추종자의 숫자도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숫자만 밀리는 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확실하게 밀린다. 가난하던 시절, 제 먹을 것 안 먹고 제 입을 것 안 입고 언 손 돌볼 새도 없이 새끼 하나 제대로 키워내는 데에도 온 힘이 모자랐을 때에는 어머니는  저 거친 세상에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방패요, 보금자리였는데 그런 절대가치를 부여받기에는 지금 세상은 너무나 안온하다.

제 먹을 것 안 먹기는커녕 아이가 남긴 음식을 쓰레기통으로 가져가기 일쑤고 나날이 바뀌는 패션에 못 따라가서 안달이지 구멍 난 옷을 입는 엄마는 드물지 않은가. 엄마는 곧 나에 대한 희생과 봉사였는데 현재의 엄마는 자식들이 보기에 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래서 호칭이 ‘그 여자’가 되었다가 ‘그 년’까지도 간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식에게 확고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게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나 좋은 대로 자식 팽개치고 놀기만 했던 건 아닌데 ‘어머니’라는 이미지에 제대로 부합되지 못한 제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엄마들도 결국 ‘어머니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날이 전전긍긍이다.

우리는 왜 어머니를 그렇게나 신격화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영화 ‘마요네즈’가 나왔을 때 난 좀 고소했다. 건물이 무너져도 유모차에 탄 아기를 몸으로 덮으며 죽어간 모정, 수능시험 날 칼바람 부는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도만을 올리는 모정, 뭐든 다 받아주고 뭐든 감내하면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자식에게 충실한 그런 모정. 그런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지기 위한 반항을 꿈꾸었다고 할까?

하지만 맞아도 그만인 가랑비가 와도 우산 들고 학교로 뛰고, 오후면 돌아올 아이들 소풍 나들이에 30분이나 ‘빠이빠이’를 하며 버스 밖을 지키고, 각종 학원 정보 수집이며 운전기사와 가정교사 노릇까지는 물론 애들 눈높이 맞춘다고 신식 유행과 노래까지 섭렵해야 하는 슬픈 현대의 어머니도 나름대로 쌓이는 게 엄청 많다 이 말이다.

그냥 탯줄로 이어져 생명을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으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 관계, 인간으로 이해받고 함께 지내기에 익숙하고 가까운 관계… 그 정도로만 ‘어머니’의 지위가 내려올 수 있다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어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의 엄마와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려진 ‘어머니’가 별로 다르지 않을 때, 나도 진정 자유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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