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자식농사’ 보다 더 중요한 ‘부부농사’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지만 그에 앞서 중요한 것이 ‘부부농사’라고 생각한다. 이전 부부농사가 부실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두 번째 농사는 좀 더 정성을 들여 잘 짓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 이외에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ME(Marriage Encounter: 혼인한 부부들이 부부관계를 깊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서로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다.

상담은 혼인식 이후에도 계속 했고 부부상담만 8회째 마감을 할 때는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스스로 밥을 떠먹어야 한다. 상담 이후로 둘 사이에 갈등이나 다툼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티격태격 하지만 예전에 비해 서로의 감정을 빨리 풀고 쉽게 화해한다.

상담 마지막 날엔 지난 3개월간 우리 부부와 딸들을 위해 수고하신 상담자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같이 했다. 새로운 복합가족이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준 그분들에게 그는 주특기인 생선매운탕을 요리해서 대접했다.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그분들과 든든한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을 고마워하면서.

ME교육은 특별한 결혼선물로 주어졌다. 혼인식 직전 인사차 찾아뵈었던 신부님이 추천을 해주신 것이다. 30년 전부터 시작된 이 부부프로그램은 가톨릭 신자인 많은 부부들이 참여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어떤 멋있는 신혼여행보다 2박3일의 이 일정이 재혼의 우리에게 더 어울리고 필요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선물에 더없이 신났지만 그는 망설이고 투덜거렸다. 왜 부부관계를 타인에게 의존하느냐, 시기도 막내딸 유학 출국을 앞두고 해야만 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혼인식 직후로 잡혀진 교육 날짜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에게 강권했다. 서로에게 가장 너그럽고 밀착되어 있는 이 시기에 부부농사에 관한 많은 것을 흡수하고 앞으로의 삶을 잘 준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ME교육의 특징은 부부 간에 느낌 대화를 하도록 했고 끊임없이 쓰도록 했다.

편지를 쓰는 방법, 상대방의 편지를 읽는 방법을 배우게 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실습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3일간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혼인 전 그에게서 받고 싶었던 편지를 한 번에 몰아서 듬뿍 다 받은 느낌이었다. 그나 나나 미처 못 한 얘기, 하기 어려웠던 속내를 다 털어놓았다.

오죽하면 그는 편지 머리마다 이런 소감을 썼다.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참 오랜만입니다. 당신이 편지 받기를 그토록 원했음에도 결국 이제야 씁니다. 미안합니다.”

“하루에 이토록 많은 편지는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나에게는 고역이지만 당신에게는 한 줄기 샘물 같겠습니다, 그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실감됩니다. 90분 동안 편지를 쓰라니 난감합니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편지 쓰기를 곤혹스러워했지만 정작 쓴 것을 보면 감동되는 글들이 많았다.

“잃어버린 10년- 이혼 후 10년은 부부관계와 가정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인생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공황상태 같고 정지된 것 같은 10년을 당신과의 혼인식으로 되찾았으니, 이제 내 나이 겨우 43세입니다. 그러나 예전 40대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자식들의 안녕에만 얽매여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 사회를 위해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더욱 너그러워지고 자상하고 표현하면서 살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행복함을 표현한 그의 편지들을 받으면서 좀 당황했다. 왜냐하면 평소 그는 좋은 감정 표현에 극히 인색했기 때문에 이런 내심의 글을 쓰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그에 반해 그에 대한 나의 편지는 그런 불만과 쌓인 감정들을 폭로(?)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글이 자신은 가해자, 난 피해자라고 규정해놓은 고발장 같다며 기분 나빠했다. 난 솔직하려 했다고 변명하며 강변하다가 말다툼이 되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기쁘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 교육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하는 것은 결심이다”와 “혼인한 독신생활은 하지말자”이다. 이는 혼인 생활 중 그가 순간적으로 밉고 서운할 때 자주 되뇌었던 메시지이다. “그래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결심(!)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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