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천오백원 에스프레소를 찾아서

지난 주말 나는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무려 1시간 45분간 버스를 타고 분당으로 찾아갔다. 45분이면 충분하다는 설명만 듣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9401번 버스에 올랐는데 토요일 교통정체를 생각 못했던 것, ‘커피 한 잔’에 무려 왕복 3시간을 바쳤다.

‘당신이 그리워질 땐 커피를 마십니다.’

한때 이 광고 카피를 좋아했는데 “커피가 그리워지면 가을입니다” 해야 할까? 요즘 산들 날씨에 부쩍 맛있는 커피가 생각난다. 아니 그렇게 마시는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몇 달 전 에스프레소 한 잔에 8000원 하는 카페를 두고 열을 내니까 작곡가 강석희 교수가 “우리 동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이 1500원인데 맛이 기막히다”고 알려주셨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값싼 에스프레소다!”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찾아가자고 의기투합한 적이 있었다.

요즘 가을바람 때문인가, 그 카페가 생각났다. 그때 함께 자리했던 사진작가 이은주씨랑 강 교수 동네에 있다는 문제의 에스프레소를 맛보러 분당 나들이를 약속했다. 가히 커피에 목숨 건 사람이 돼본 짜릿한 기분이었다.

“제가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데 커피점에서 두 잔 마시기 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두 잔 마셔도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값을 정했습니다.”

‘Designer's Cafe’라는 상호가 꼭 어울리는 아담한 분위기의 카페인데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여주인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를 차렸다는 말도 흐뭇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 1500원, 카푸치노 2500원, 아메리카노 1500원. 일반 카페 체인점의 거의 절반 값이다. 거대한 오피스텔 빌딩 1층 회랑에 자리 잡았으면서 꼭 유럽의 어느 동네 카페 같은 분위기가 이 소박한 값과 어울려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흔히 커피를 가장 값싸고 흔한 기호식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잘것없음을 허용하지 않는 기쁨이 있다”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을 나는 자주 떠올린다. 커피를 마실 때 ‘분위기’를 찾는 것이 바로 그렇다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 혼자 집에서 커피를 들 때 특히 그렇다. 귀하고 멋지게 마시고 싶다.

삶의 여유, 숨을 돌리며 나를 돌아보고 친구와 정을 나누는 데 이 커피가 얼마나 도와주었던가. 벌써 오래 전 한국에서 3년간 근무했던 프랑스 여자 외교관이 서울을 떠나면서 “단골 커피점 하나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해 나를 뭉클하게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마음에 든 카페가 없었다는 얘기도 되고 또 함께 마실 친구가 없었다는 토로 같아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이라면 함께 잘 다녔을 텐데…. 가을을 느끼면서 부쩍 커피와 분위기가 생각나고 옛날 그 외국인 친구까지 그리워진다.

‘그리움’이 강해지는 계절이 바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무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값싸고 최고로 맛있는’ 커피 한 잔의 분위기를 찾아 비싼 차비를 마다않는 내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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