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한 단에도 어머니는 온 정성 쏟는데…

엄마는 열무 한 단을 신문지 위에 풀어헤치더니 하나씩 들어 세세히 보면서 이파리를 매만지고 시들한 쪽은 따내면서 정성스레 다듬는다. ‘저게 열무 한 단이 아니라 장미꽃 한 다발이었던가…’ 혼자 의심해보며 나는 아까부터 엄마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아침 먹으면서 여름엔 열무김치에 밥이나 비벼 먹으면 딱이라던 남편 말이 생각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열무김치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기에 (사실 난 남편이 열무김치를 못 먹는 줄 알았다) 요리법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엄마, 이 서방이 갑자기 열무김치 먹고 싶다는데 어떻게 담가야 맛있어?”

엄마에게 적절히 매달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는 약간 뻔뻔한 이 딸은 요리책을 펴보는 대신 비슷한 ‘껀수’만 있으면 무조건 전화부터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이따가 점심 약속 끝내고 너희 집에 가서 담가줄게, 재료만 사다 놔라’ 하신다.

손 안 대고 코 풀게 된 것만 좋아서 슈퍼마켓에 가서 열무 두 단과 얼갈이 한 단을 사다가 비닐봉지째 오전 내내 베란다에 내던져 놨던 것을 엄마가 오셔서는 김칫거리로 장만을 하시는 중이다. 채소는 사오면서 시들기 때문에 곧장 부엌으로 들어와 음식 재료로 장만을 해야 하는 거라며 시든 쪽은 우거지용으로 따로 떼어내 모아놓으신다.

부엌살림 20년 경력을 가진 내가, 열무 한 단을 놓고도 꽃꽂이 강사처럼 정성을 다하는 엄마를 보며 한없이 작아진다. 직장을 다니며 쉴 새 없이 바쁘셨던 엄마가 전업주부인 이 딸보다 먹거리를 훨씬 소중히 다루는 모습을 보니 경건함까지 생긴다. 이제 자식들이 다 성가해 용돈 줄 걱정 없어 좋고, 시간이 남아돌아 좋고, 당신 한 몸만 간수하면 되니 이런 호사가 어디냐며 기분 좋게 열무를 다듬는 엄마 손끝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속에 열 가지 반성과 스무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한다.

엄마는 언제나 이렇게 나에게 몸으로 가르침을 주신다. 말 잘하는 나는 남의 말은 잘 안 듣는 대신 잔소리는 쉴 새 없이 해대는 엄마인데 어느 육아 책에 보니 ‘아이들은 들은 대로 자라지 않고 본 대로 자란다’고 써 있어서 많이 심란했던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내 자식이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도 인생 선배로서 본보기가 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삶의 태도와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엄마가 만들어놓은 열무김치 먹는 내내 그 생각을 해야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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