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에서 나오는 도박시장의 돈은 어마어마하다. 게임용 상품권 발행액이 30조 원. 전국 골목골목마다 사행성 게임 오락실이 편의점 숫자보다 더 많은 세상이다.

이 현실에 비하면 공익적 여성사업을 구상, 실천하면서 헌신하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얼마나 건강한 국민인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개미같이 알뜰하고 부지런한 여성들이 기대고 있는 그 알량한 20억 예산이 절반으로 뚝 잘린다고 한다. 무슨 철학이고, 무슨 기준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기획예산처가 여성가족부의 여성단체 공동협력사업기금 예산 21억 원을 10억 원으로 줄였다. 이 10억 원은 전국의 여성단체 100여 개가 1년 내내 하는 사업비로 써야 할 돈이다. 이들 여성단체는 그동안 단체별로 2000만 원쯤 돌아가는 이 사업비를 여성부로부터 타내기 위해 정말 심혈을 기울여 기획서를 쓰고, 알뜰살뜰하게 사업을 집행해 왔다.

반면, 여성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선 여성단체들과 긴밀히 협력해야 할 일들이 많다. 저출산, 가족정책, 양극화 해소, 복지정책 등의 국정 현안들은 민간단체의 활약이 크게 기대되는 문제들이다.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실험적인 시도를 해왔다.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이 소위 ‘요보호 여성’을 중심으로 한 부녀자 정책에서 양성평등, 성인지 정책을 거쳐 가족친화 정책으로 진화하기까지 여성단체들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다.

‘국민의 정부’ 이후 여성단체는 여성부의 출범 자체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정책수행에 있어서도 여성부와 동반자 의식을 가지고 정책의 한 부분을 담당해 왔다. 한명숙, 지은희, 장하진 등 전·현직 여성부 장관이 모두 여성단체 출신이다. 가부장적인 관료조직의 한계와 여성정책 공백을 민간에서 채워나간 것은 우리나라 여성발전사의 독특한 일면이랄 수 있다. 

앞으로도 사정은 같을 것이다. 저출산·가족친화 정책 같은 문제들은 생활 전반에 걸친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들이 번번이 냉랭한 반응을 받는 것도, 국민의 요구를 근본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이런 간극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성단체의 활발한 움직임이 필수다. 

여성단체들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현재 21억 예산은 오히려 너무 적다. 예산을 10배 증액해도 충분치 않을 텐데, 그것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건 국가 현안에 대한 판단 착오로 보인다.

사행성 게임 시장엔 천문학적인 숫자가 유통되는 ‘돈의 바다’를 만들어 놓고, 여자들이 목숨 걸고 있는 ‘쥐꼬리만 한’ 돈엔 그토록 인색한 예산 정책은 ‘젠더(gender) 양극화’의 표본이 아닌가.

예산처는 일찌감치 ‘성인지 예산안 작성 지침’ 항목을 별도로 마련, 내년부터는 각 부처가 성인지 예·결산 작성을 의무화하도록 해놓았다. 이런 예산처의 여성단체 사업예산 삭감이야말로 스스로 세운 성인지 예산정책관에 정면으로 모순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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