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엔 미국으로 떠난다. 석 달 전 태어난 손자를 봐 주러. 손자를 ‘보러’가 아니라 ‘봐 주러’라는 데 주목하시라.

며느리가 아직 공부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아이를 키워주어야 한다. 물론 앞으로도 며느리는 계속 일을 가질 터이므로 아이 키우기는 누군가와 나눠 할 수밖에 없고, 그 ‘누군가’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시설들이 있을 게다. 문제는 생후 2년 정도까지는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언뜻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법이나 제도가 친여성적일 걸로 짐작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산전산후 휴가 90일도 보장되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고작 60일을 휴가로 주지만 처음 2주인지 3주인지만 유급이고 나머지는 무급이란다. 이런.

보육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정말이지 철저하게 돈의 논리가 따른다. 싼 곳과 비싼 곳의 차이가 너무 분명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출산율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건 왜일까. 아마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

세상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아무튼 최소한 두 살까지는 집에서 키우는 쪽으로 해보자는 게 아들네의 뜻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면 대충 알 테니까.

아들네가 한국에 산다면 문제는 훨씬 간단할 텐데라고 말하면, 웃기지 마라, 아이 키우기가 그렇게 간단하면 출산율이 왜 이렇게 떨어지겠냐고 퇴박을 당하겠지. 물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서유럽이나 북유럽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미국과 비교할 때 이곳은 시설은 아직 미비하더라도 사람 구하기는 비교적 쉽잖은가. 도우미를 부를 수도 있고 여기저기 잠깐씩 봐줄 가족도 있고.  

처음에는 겁도 없이 산구완을 하러 가겠노라고 큰소리를 쳐서 주위에 걱정을 끼치기도 했다. 산구완이 무슨 장난인 줄 아느냐, 모두들 네 몸이나 구완하라고 지청구를 놓았다. 다행히 산구완을 해줄 도우미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실마리가 가볍게 풀렸다. 그러나 기간은 딱 석 달밖에 못한단다.

이제 다음 주자로 할머니인 내가 그 아주머니와 바통 터치를 하러 간다. 명실상부한 할머니 경력을 쌓으러 출장을 떠난다고나 할까. 예정 기간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반년.

나의 야심찬 계획을 들은 사람들, 반응이 가지가지다. 친구들은 대부분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한 여자가 웬 할머니 노릇이냐고 웃는다. 그냥 며칠간 손자 얼굴이나 보고 오란다. 공연히 민폐를 끼쳐 며느리 괴롭히지나 말고.

어떤 중년 여성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페미니스트도 별수 없다나 뭐라나. 보육의 사회화를 위해 뛰어야 할 사람이 미국까지 가서 손자를 봐주면 어떡하냐고, 심지어는 가족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인다. 허, 참. 

어떤 지인들은 여기서도 할 일이 많은데 ‘고급인력’을 그렇게 썩히면 되느냐고 걱정 반 충고 반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난 큰소리 탕탕 친다. 내가 그냥 아무 계산 없이 가는 줄 아느냐, 할머니 경력 조금 쌓아서 그걸 콘텐츠로 ‘할머니 육아일기’를 써서 대박을 터뜨릴 작정이라고.  

그런데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할머니 육아일기’는커녕, 가장 원초적인 걱정이 앞선다. 도대체 이렇게 힘없는 허리와 팔로 아기를 안을 수나 있을까? 석 달은커녕 일주일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고, 모르겠다. 일단 비행기를 타봐야지 뭐.

※덧글:헤라니메일 수신자 여러분, 제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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