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죽음
내 곁의 죽음
  • 박혜란 / 여성학자
  • 승인 2006.08.11 14:56
  • 수정 2006-08-1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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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갔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 나보다 두 살 더 먹은 오빠가. 여섯 남매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이 가장 먼저 갔다. 세상에 나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세상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데 오빠는 순서를 잘도 지켰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오빠는 아주 건강했다. 요즘 우리 남매들의 걱정거리는 오빠가 아니라 남동생이었다. 오빠보다 아홉 살 아래인 남동생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평소 전화연락을 자주 않고 지내는 사이였던 우리는 요즘 몇 달 동안 남동생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자주 나누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지냈다.

그래서 둘째 여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오빠가 위독하다는, 느닷없는 소식에 귀를 의심했다. 슬픔 때문에 동생을 오빠로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토록 건강해 보이던 몸에 암세포가 마구 자라 뼛속까지 퍼졌단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병원으로 달려가 만난 오빠는 오빠가 아니었다. 언제 만나도 사람 좋은 웃음을 잃지 않던 오빠는 없었다. 왜 자신이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뼈를 갉아 먹는 고통으로 단 한순간도 잠을 못 이룬 채 지치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병상에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는 자신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올케를 십년 전에 먼저 보냈기 때문에 오빠의 보호자는 딸이었다. 정확한 진단 결과가 나오면 그 즉시 오빠에게 알리기로 조카와 의견을 모았다. 그래야 남은 삶을 정리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빠에겐 그런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면회를 간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오빠는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이틀도 안 돼 갔다. 성미도 참 급하지. 살았을 땐 그리도 느긋하더니만.

앞으로 ‘재수 없으면’ 모두들 백 살씩들 살지 모르니까 단단히 채비를 하라고 노상 떠들고 다녔었는데 정작 내 주변 사람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뜨는 것 같다. 다른 부모님들은 여든 아흔까지 잘도 사시던데 우리 부모님은 왜 겨우 70대냐고 속상해한 게 얼마 전이었는데 오빠는 그보다 훨씬 더 먼저 가 버렸다.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다른 가족은 늠름하게 일을 척척 처리해 나가는데 난 아무 것도 못한다. 공연히 눈물만 글썽이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거치적거리기나 한다. 그게 영 민망스러웠던지 내 몸이 나를 감싸고돈다. 무슨 조화인지,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는 거다. 고만 슬퍼하고 네 몸이나 신경을 쓰라는 듯이. 아, 오빠의 죽음은 내 허리통증에 밀려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가장 편안한 자리를 확보하고 앉는 얌체 짓을 저지른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문상 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젊었을 때는 문상 가는 일이 끔찍해서 아무 것도 안 먹고 얼른 나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편안해지고 상가에서 주는 밥도 맛있게 먹는다. 죽은 자를 앞에 놓고 산 자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배울 것 투성이다.

이제 오빠의 빈소에서 또 배운다. 타인을 위로하는 법에 대해서다. 문상객들은 오빠가 너무 황망하게 가버려서 속상해하는 내게 그런 죽음이 오히려 행복이라고 바꿔 말할 줄 안다. 고통스러운 투병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잘 됐느냐는 거다.

인간의 최대 희망이 잠자다 죽는 것일진대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거긴 못 미쳤을망정 며칠 앓다 갔으니 그 정도면 복 받은 죽음이라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미 인생 9단의 경지에 들어선 것처럼 넉넉해 보인다. 우리는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쳐 준다. 도처에 스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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