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영어달인 되기 위하여

나는 말이 적은 사람을 좋아한다. 조용히 귀기울이며 내 맘을 알아주고, 내가 싫어할 말은 하지 않는 따뜻한 ‘모모’가 나는 좋다. 유창한 말솜씨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 떠드는 사람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답답하다. 모모는 내가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믿음직하고 유능한 기쁨조다.

2001년 7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지내면서 나는 모두에게 환영받던 모모를 내 둘째 아들 Y에게서 발견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7년을 자란 형과는 달리, 돌 때 귀국하여 별로 영어를 배우지 못한 Y에게 초등학교 3학년 미국 학교는 버거웠다.

처음 열흘간은 학교 가기 전에 복통과 구토로 진땀 흘리는 Y를 아침마다 반시간 이상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달래야 했다. 조금 먼저 미국에 온 같은 반 한국 친구들이 영어 못한다고 놀려댔고, 영어를 쓰는 미국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적응을 돕고자 매일 두 시간씩 방과 후 나는 Y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쳤다. 집 밖에서는 한국 아이들과 한국말만 쓰기 때문에 집에 ‘가두고’ 가족끼리 영어만 썼다. 밤마다 한국에 있는 친구 꿈을 꾸며, 왜 이런 지옥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제기하는 의문은 Y만의 것이 아니었다. Y의 불행에 책임을 느낀 엄마로서 나는 점점 큰 소리로 웃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푼수가 되어 갔다. 

2002년 2월 밸런타인데이에 Y는 같은 반 친구 모두에게서 카드를 받아왔다. 카드에는 ‘funny boy’인 Y에 대한 호감이 그득히 담겨 있었다. Y가 밝고 따뜻해서 모두에게 인기라는 담임교사의 칭찬은, 엄마끼리 전화로 약속하여 주말 왕래를 튼 중국인과 미국인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으로 이어졌다.

우리 집에서 불고기, 김치, 김밥을 대접하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다가나는 왜 Y가 인기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크게 웃으며 서툰 영어로 계속 칭찬하는 유능한 푼수 모모였다. 영어실력이 보잘 것 없었지만, 그는 높은 EQ와 성숙한 감성으로 모두를 감싸며 멋진 순간들을 연출했다.

불현듯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난 많은 미국인 친구들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적대감이 가득 찬 망가진 인격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부모에게 버림 받고 입양되었거나, 이혼이나 별거로 한 쪽 부모 슬하에서 자란 균형이 깨진 가정 출신인 그들은 모두 외롭게 모모를 그리워했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정감을 지닌 ‘희귀한’ 미국 모모도 만났었는데, 알고 보면 그들은 적어도 고교시절까지는 부모와 함께 성장한 행복한 가정 출신이었다.

건강한 가족의 충분한 사랑 속에 자라나, 넉넉한 유머와 안정된 행복감을 나누는 모모가 많아지면, 우리 지구촌은 말보다는 웃음으로, 경쟁보다는 화합과 양보로 형성되는 유익하고 즐거운 인간관계로 환해지리라 믿는다. 이렇게 행복한 소망을 과연 영어 때문에 포기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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