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편] ‘왕의 여자’ 각본없는 드라마
위험한 로맨스 뒤엔 비극이

아침 인사차 백악관 대통령 침실 문을 연 보좌관은 눈앞에 펼쳐진 야한 광경에 어쩔 줄 모른다. 대통령이 여 변호사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 영화 ‘대통령의 연인’의 한 장면이다. 현직 미국 대통령과 사랑에 빠진 여인. 정말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 같은 러브 스토리가 미국 백악관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다.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과 그의 부인 에디스 볼링 갤트가 그 주인공이다.

“모퉁이를 돌자 나는 나의 운명과 마주쳤다.”

1915년 3월 어느 날. 에디스는 백악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윌슨 대통령과 마주쳤다. 첫 부인을 잃은 대통령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 그는 거의 날마다 열정적인 편지를 썼다. 이 무렵 그들이 남긴 러브레터는 무려 250통이나 된다.

에디스의 일생은 영화처럼 극적이다. 그녀는 이미 15세 때 무려 23세 연상의 남자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24세에 결혼했으나 30대 중반에 남편이 사망하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윌슨을 만났을 당시에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매력적이고 돈 많은 40대의 싱글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에디스를 만난 지 채 2개월이 지나지 않아 청혼을 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소년에게 단짝이 필요하고 강인한 남자에게 내조자와 마음의 동료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중략) 지금 나는 내일 저녁에 할 연설과 독일에 보낼 경고 서한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미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윌슨은 그의 청혼에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국가 경영이라는 짐을 함께 짊어진 것처럼 느끼게 했다. 8월 중순 그들은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 그때부터 윌슨은 그녀에게 보내는 연서에 대통령의 자필 주석이 달린 국정 문서들을 동봉했다. 그녀의 집과 백악관 간에 직통 전화를 설치했다. 그는 또 자신이 해외에 파견한 밀사와 의사소통 하는 1급 비밀 암호를 해독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윌슨 대통령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에디스. 그녀는 이제 그의 정치적 동반자라는 사실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들은 만난 지 9개월 만인 1915년 12월 18일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차기 대선을 불과 1년 앞둔 대통령의 갑작스런 재혼이 국민의 저항을 일으킬 것을 우려한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결혼이었다.

윌슨은 1916년 대선에서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을 공약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1917년 4월 마지못해 전쟁에 개입하게 되자 종전 후 또 다시 살육적인 전쟁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기구, 즉 국제연맹의 창설을 역설했다. 윌슨이 이때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일제 치하에 시달리던 3·1 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에서 국제연맹 창설을 위해서는 상원의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상원의 분위기는 국제연맹의 창설을 반대하는 쪽으로 흘렀다. 그러자 윌슨은 국제연맹을 위한 싸움을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로 바꾸어버렸다. 가뜩이나 허약했던 그는 대륙횡단 열차로 8200마일을 달리며 40회나 연설을 해야 했다. 무리한 일정으로 1919년 9월 25일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나 감미로운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상상도 못했다.”

에디스의 비서였던 에디스 벤험은 윌슨 부부의 사랑을 이렇게 증언했다. 두 사람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사랑은 백악관에서의 로맨스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윌슨은 곧바로 여행을 취소하고 워싱턴으로 되돌아왔으나 완전히 병상에 눕게 되었다.

에디스는 국민에게 그의 비극을 숨기기로 결심하고 백악관 문을 닫아 걸어버렸다. 대통령 관저에 두껍게 장막을 둘러쳤다. 그 장막 뒤에서 그녀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를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당시 에디스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가하는 것을 맹렬히 반대했으나 1920년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되어 여성들은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대통령 대리역 맡고 결국 레임덕 초래

“우리는 여인 천하의 정부를 갖고 있다.”

의료 참모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심지어는 부통령인 토머스 마셜까지도 그랬다. 대통령의 집무는 에디스에 의해 사실상 결정되고 주도되었다. 각 장관들과 상원의원이 대통령의 결정을 받아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에디스가 대신 만났고, 그녀가 대통령에게 간추려서 전해주었다. 윌슨은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에 있는 마지막 18개월을 보냈다. 그는 1921년 3월 퇴임했으며, 3년 후인 1924년 2월 사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말은 “에디스”였다. 에디스는 윌슨의 사망 후에도 40여 년을 더 살았다. 단지 좋은 아내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에디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태만한 통치를 가져왔고, 미국을 위기로 몰아넣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미국은 에디스 사례를 교훈삼아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즉각 ‘대통령이 병에 걸리거나 사망했을 경우 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헌법 수정조항 제25조항을 통과시켜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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