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경기 침체로 취업률은 낮아지고 실업률은 높아 지는 가운

데, 대학원 입학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94년부터 두드러

지게 증가하기 시작한 서울 지역 유명 대학의 대학원 입시 경쟁률은

평균 4대1에서 5대1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원 입학 경

쟁률이 높아지는 주된 요인은 취업난을 ‘학벌’로 통과하려는 사람

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연세대학 교학과 담당자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등록을 포기

하여 대학원 행정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는데 많을 때는

한 학기에 50명을 웃돌기도 한다고 밝힌다. 한편 시내 유명 대학원은

타대학 출신자들이 과반수를 넘는 등 대학원을 ‘학벌세탁’의 수단으

로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본격적인 학문의 도량으로 자리잡아

야 할 대학원이 실업의 도피처로 전락하는 현상도 보인다. 하지만 이

들 생각과는 달리 각 기업은 석사 학위 소지자들을 기피하고 있다. 기

업이 요구하는 일반 사무업무는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기업측이 초과 비용을 들여서까지 이미 나이도 더 먹어버린

인력은 사용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력을 대졸 사원과

동일하게 인정한 상태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들이 직장 내에서 위

화감을 조성하여 팀웍을 깨뜨린다는 것이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전언

이다. 결국 취업에 불안을 느낀 일부가 돌파구나 도피처로 대학원을

찾지만, 석사학위를 취득하더라도 취업의 문은 더 좁아지는 셈이니 결

국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고학력 고실업

이라는 학력 인플레 현상을 초래해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

다.

지난 한 해 총 9천3백39명의 여성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중 8

백16명이 진학했고, 약 68%에 달하는 6천3백32명이 취업에 성공했

다. 이들 여자 대학원 졸업생은 93년에는 66.3%, 94년 66.1%, 95년

69.2%의 취업률을 나타냈는데, 이에 비해 남자의 경우 각각 91.8%,

90.7%, 91.5%의 취업률을 보여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지난 96

년 8월부터 97년 2월까지 서울의 모 여대가 실시한 석사 학위 소지자

들의 취업 결과 조사에 따르면 총 5백32명의 석사 학위 취득자 중 3

백30명이 취업했다. 정확하게 어느 분야로 진출했나 까지는 알 수 없

지만, 전공과 다른 분야로 진출한, 일반 사무직으로 들어간 사람도

상당수라는 것이 대학원 관계자의 말이다. 또 ㅇ여대 한 학과의 경

우 2백50여명의 석사 출신 가운데 30명 정도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

다. 일자리를 얻으려 시도했다 실패한 나머지는 결혼을 하거나 그냥

놀고 있다.

대학원 진학자는 대체로 학부 때 성적이 과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다. 이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했더라면 석사학위를 소

지한 이후보다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지난 96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은 56% 수준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정도의 실력

이라면 충분히 취업이 가능했을 일이다. 이에 대해 취업전문가들은

취업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대학원을 가지 말아야 한다’고 권한다.

우리 사회 구조가 여성이 석사까지 취득한 ‘조건’을 부담스럽게 여

겨 오히려 취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원 졸업 후 직

장생활을 했던 ㅇ여대의 안모 씨는 (39) 대학원을 졸업 한 후 극심한

아노미 현상을 겪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공부를 더 했으면 필요로 하는 곳도 더 많고 대우도 더 나으리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석사 학위 받은 사실을 숨기

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일단 서류를 제출하면‘다 좋은데 석사

라서…’라며 주저하는 경우를 많이 당했기 때문이지요. 석사 학력을

인정 못받더라도 취직을 하고자 하지만 그마저 받아주는 데가 별로

없어요. 사회에서 여자들을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경영자 마인드가 결

혼 한 이후까지 여자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

은 석사 출신들을 꺼리는 것 같아요.”

한편 시내 ㅇ대학 국문학과 박사학위 소지자 한모(31)씨는 이같은

고학력 여성을 기피하는 사회적인 통념 외에 대학원측의 문제도 많다

고 말한다. “대학원이 직업 훈련소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진출했을

때 생계를 해결할만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고,

교수님들도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제가 순진했지요. 설사 교수들이 제자들의 진로를 고민하고 길을 모

색한다해도 이는 남학생에 한한 것이죠. 그러니 여성들은 이미 학문

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을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지니 박사까지 해서

안되면 유학까지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더 높은 학력을 소지할수

록 길을 더더욱 좁아지는데도 말입니다.”

지난해 ㄱ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씨(26)는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

했는데도 취직이 안돼 주위의 눈총도 따갑고 스스로도 많이 위축됐다

”며 “그렇다고 아무데나 취직할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밝혔다.

좀더 나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ㅇ대학 대학원 국문과의 박모(26)양도 석사학위 논문 제출을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대학원 진학을 할 당시에는 공부를 좀더 하면 길

이 열릴 것 같았지만 공부가 적성은 아닌 것 같고, 취업을 하자니 그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주위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평론가 김농주씨는 석사학위 소지 여성들이 겪

고 있는 모순은 바로 한국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남성의 지나친 가부장적 고용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정보지식 중심 사회, 능력중심의 사회에서 ‘많이 배운 여

자는 부려먹기 힘들’고 ‘임금을 더 줘야 한다’는 이유로 고학력자

를 기피하는 것은 딜레마입니다.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닌 실력인데

도 학벌을 따지면서 동시에 고학력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지요.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사회 여성교육을 하향평준화

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학위

소지 여부가 채용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김농주씨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학력 여성 할당제’를

제안한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이나 연구소 같

은 곳에서도 여성할당제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연세대 국문학과 대

학원을 졸업하고 강사직으로 받는 보수로 빠듯하게 살아가는 정모

(32)씨는 “우리 과만 하더라도 석사학위를 받은 여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가장 손쉽게 학원강사나 일반 사무직에 취업을 한다. 나머

지는 진학을 하거나 학업을 포기하고 고급 백수로 지내는 것이다. 여

성은 학생을 끌어들이기에만 급급하고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

지 않는 학교와 교수, 많이 배운 사람은 써주지 않는 꽉 막힌 사회구

조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토로했다. 해마다 1만여명 가까이 배출

되는 석사 인력. 이들은 진학이나 결혼 외엔 뚜렷한 진로를 찾지 못

하고 방황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지난 6월 개설한 고급인

력센터의 ‘중견경력 인력’에는 현재 12여명의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구직 희망 원서를 제출한 상태이고, 서울인력은행에는 1월부터 현재

까지 등록된 구직 희망 대학원 졸업자 33명 가운데 15%인 5명만이

일자리를 얻었고 나머지는 취업 대기 중이다.

'최이부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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