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문화상

해토머리 들녘은 짙푸르고

통통하게 알이 밴 가지 속에서

꽃과 잎들이 내뱉는 숨이

내가 탄 마을버스 차창에 몸을 던진다

고장 난 컴퓨터에게 가는 길

뒤란의 허물어진 토담을 손질하는 몸짓,

토방에 고요히 숨이 들어간 햇콩두부 냄새가

시든 나의 몸으로 들어온다

낡아 닳아버린 먹오디 빛 툇마루에 앉아

이미 오래 전 멈춰버린 컴퓨터를 기다리는 동안

탁-탁-탁-탁

전송되지 못한 정보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세월을 켜켜이 인 새까만 얼굴

나무의 밑동 같은 눈으로

나와 다른 세상을 사는 컴퓨터에게서

‘느림’이라는 단어를 입력당한다

붉은 알전구가 꺼지자 밤이 켜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고장 난 컴퓨터 옆에서

나는 수신한 정보들을 모두 지우고

전파소리 들리지 않는 방안엔

굽은 등을 보이며 누운 여인과

타악-타악-뚜-

스스로 전원을 끈 컴퓨터가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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