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 등 그룹 총수들이 잇따라 ‘디자인 경영론’을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사활’을 건 디자인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제품의 경쟁력이 ‘기술과 품질’에서 ‘디자인’으로 넘어가면서 각 기업은 여성의 감성을 사로잡는 여성의 감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흥길 숙명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과거 남성 위주의 산업과 디자인산업 구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감성과 창의력이 여성 디자이너들에게서 발현되고 있다”며 “여성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급성장하면서 ‘디자인과 여성’은 기업 성장의 키워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미국 ‘미디어마크 앤드 리서치 인터렙(MediaMark&Reaseach Interep, 2002)’은 가구의 94%, 휴가와 여행관련 상품의 92%, 주택의 91%, 자동차의 60%를 여성이 선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는 특히 IT·디지털 부문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핑크색 휴대전화가 ‘패션 아이콘’으로 뜨는가 하면, 기존의 디자인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을 첨가하면서 ‘대박’ 명단에 이름을 올린 MP3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삼성과 LG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 상류층 여성을 겨냥한 제품 생산에 주력하면서 ‘명품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 애니콜은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벳시 존슨과 공동으로 ‘벳시 존슨 폰’ ‘안나수이 폰’ 등 패션 휴대전화로 미국 10대 여성을 사로잡고 있으며, 유럽을 겨냥해 세계적 오디오 전문업체 뱅앤올룹슨사와 공동 개발한 명품 휴대전화 ‘셀린’ 을 출시했다.

LG전자는 영국 상류층 여성을 겨냥한 세탁기 ‘스팀 트롬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이며 판매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제품은 영국의 세계적인 홈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샤 길드가 디자인한 제품이다.

이처럼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 전략은 자동차 등 고가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자동차 회사가 ‘여성용’ 이란 이름으로 ‘색상’이나 ‘인테리어’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는 여성을 위한 컨셉트카 ‘YCC’를 선보였다. 100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기획한 ‘YCC’는 여성들이 자동차 관리나 수리를 위해 후드를 여는 일이 거의 없음을 착안해 후드를 없앴다. 또 하이힐에 긴 드레스를 입었을 때 굽이 문턱에 걸리거나 옷자락에 더러움이 묻는 것을 막기 위해 위로 열리는 날개식 문을 달았다. 고가의 아파트도 실내외 인테리어 및 실내 디지털 사양 모두 여성에게 맞춘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고가의 제품일수록 디자인에 ‘여성성’을 담는다”며 “페라리 등 최고급 스포츠카, 고급 담배 등 남성이 사용하는 제품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한편, 최근 디자인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여성 디자이너 비율은 약 60.4%(99년 53.1%)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고, 평균 취업률도 70.5%로 남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삼성과 LG 등 대기업의 여성 디자이너 비율은 30%, 디자인 전문회사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현재 디자인진흥원에 등록된 240개 디자인 전문회사 중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40명에 불과하다. 취업률은 비슷해도 규모가 큰 회사, 고위직일수록 여성의 자리는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한정완 한양대 교수는 “여성은 기업 혁신에 남성보다 적극적이며,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도 남성보다 탁월하다”며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정부의 가족 친화적 제도의 정책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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