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상담보다 음악·문학은 훌륭한 항우울제
심리치료 콘서트, 자기고백적 글쓰기 등 인기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절 키워주신 할머니가 아침마다 항상 눌은밥을 끓여주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찾아 갈 때마다 뭐든 안겨주려 애쓰는 친정어머니가 ‘나무’와 같은 존재네요.”

지난 6일 광진구 자양동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직테라피 콘서트 ‘음악이 가르쳐 준 비밀’이 열리는 현장.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곡을 붙인 음악을 핸드벨, 작은 북 등 악기를 하나씩 맡아 직접 연주한 관객들이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며칠 전 결혼 후 처음으로 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다”는 한 주부의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이는 관객도 있었다.

최근 음악, 미술, 글쓰기 등 문화에 치유 코드를 접목한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나루아트센터에서 지난 2월부터 매주 둘째·넷째 화요일 개최하는 ‘음악이 가르쳐 준 비밀’은 병원이나 장애인 시설 등에서 쓰이던 음악치료를 대중적인 공연장으로 끌어낸 첫 케이스. 공연을 기획한 김영진 팀장은 ‘브런치 콘서트’를 계획하다 낮 시간 근처 카페를 가득 메운 주부들이 친구들과의 수다를 스트레스 해소의 유일한 배출구로 삼는 것을 보면서 음악 치료콘서트를 시작했다.

상계동에서 온 조정희(46), 박종삼(49)씨는 동네 친구사이. 우연히 신문기사를 본 조정희씨의 권유로 세 번째 참여했다는 박씨는 “집에서 나와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렌다”고 얘기했다. 조씨는 “정신적인 여유를 느끼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인생이 허무하더라”며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음악치료사 한정아씨는 “음악을 들으면서 쌓였던 감정을 표출하고 상처가 치유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름 방학 기간엔 엄마와 자녀가 함께 참여해 갈등을 풀어가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가수 변진섭씨가 지난 2월 공연한 ‘슬림 콘서트’는 음악치료를 대중가수의 공연에 이용한 독특한 경우. ‘희망사항’ ‘새들처럼’과 같은 노래를 듣고 빨강, 노랑 등 ‘컬러 치료’를 이용해 꾸민 무대를 보며 맨발로 공연장에 입장해 촉각을 느끼고 향을 피우는 ‘향기 치료’에 허브티를 제공하는 ‘아로마 치료’까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콘서트다.

심리치료를 통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풀어 폭식을 예방한다는 ‘다이어트 콘서트’는 특히 중년 여성들의 큰 인기를 끌어 주최 측은 계절별로 공연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매주 금요일 진행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낡은 나를 벗는 시간’은 글쓰기가 치유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좌다. 고통의 기억을 되살려 그 뿌리를 찾고 글쓰기와 명상, 그룹토의와 집단상담 등을 통해 치유 과정이 진행된다. 2030을 대상으로 하는데 수강생의 대부분은 2040 여성들이다.

강사인 박미라씨는 “처음 시작할 땐 인원이 모자라 폐강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지만 벌써 다음 기수까지 예약이 차 있을 만큼 인기 강좌가 됐다. 그는 “글은 ‘객관화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상담이나 정신과 의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게 한다”고 글쓰기의 치유능력을 강조했다.

여성들의 치유 글쓰기는 책으로 묶여져 대중에게 발표되기도 한다.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www.unninet.co.kr)의 자기 고백적인 글쓰기 공간인 ‘자기만의 방’에 털어놓은 글들은 얼마 전 ‘언니네 방’(갤리온)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부산의 성매매여성지원센터 ‘살림’에서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들도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살림)를 출간했다. 

이렇듯 치유를 위한 문화활동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박미라씨는 “사회가 풍요해지면서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해 참고 숨겨두었던 내면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 풀이한다. 또한 “지식사회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인텔리일수록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결벽증을 갖고 자신에게 만족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직접적인 상담보다 음악, 글쓰기 등의 매체를 통한 치유활동은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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