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남자들(주로 늙은 아담들이지만)도 비교적 솔직해진 것 같다. 빤한 헛폼을 재는 대신 넋두리를 하는 걸 보면. 넋두리에 넘어가지 말라고, 그게 다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경고도 있지만 아무튼 여자의 전용물이라고들 일컫던 넋두리를 남자들이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넋두리의 주된 내용은 ‘왕따’다. 죽기 살기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터에서 왕따를 당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족으로부터 기대했던 위로는커녕 더 심한 왕따를 당하는 처지이니 이처럼 서글프고 분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이다.

아이들은 대화를 기피하고, 아내는 밥 차려 주는 것조차 귀찮아한단다. 그동안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에 자신이 맘 편히 쉴 자리가 아무 데도 없다니 이처럼 허무할 수가 없다고들 한다.

그들의 결론은 단순하다. 이 모든 게 아버지를 하늘처럼 떠받들던 전통적인 가족윤리의 실종 탓이며, 이기적인 여자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와, 정말 그렇다면, 여자들 너무 힘센 거 아냐?

그런데 문제는, 남자들의 넋두리가 그저 넋두리로 끝난다는 데 있다. 자신을 왕따시키는 가족을 원망할 뿐 왕따의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건 꿈에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왕따의 이유란 단지 ‘더 이상 돈을 못 벌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단순할 수가! 물론, 혹시, 만에 하나, ‘남자의 존재 이유는 죽을 때까지 돈 버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여자도 있을 수야 있겠지만, 바보는 언제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참으로 잔인한 표현이지만, 늙은 아담은 가족 내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이건 울리히 벡이 ‘사랑, 그 지독한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이란 책에서 한 말이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역할 분리에 따라 여태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늙은 아담들이여, 앞으로 남은 긴 인생을 그저 넋두리나 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이나 아내한테 일방적으로 군림하려 들지 않으면 된다. 일생 돈 벌어다 준 공로를 내세우며 영원한 가장으로서 대접해 주기를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평등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일상생활에서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엊그제 한 모임에서였다. 나이 들어갈수록 초라해지는 친구들이 못마땅해 죽겠다며 한 늙은 아담이 울분을 터뜨렸다.   

 “왜 남자들이 마누라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전전긍긍하는지 모르겠어. 요즘 슈퍼에 가면 오죽 잘 돼 있어? 반찬거리도 일인분씩 포장돼 있는 데다, 야채도 다 다듬어져 있겠다, 그냥 사다가 된장 넣고 끓여 먹으면 되는데 그걸 못해?”

물론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따로 끓여 먹고 살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고정관념만 깨뜨리면 의외로 간단한 문젠데 남자들이 그 틀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데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다.

하긴 말이 쉽지. 지금 늙은 아담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부엌에 들어오면 뭐뭐가 떨어진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으니.

그러니, 5월 가정의 달이 가기 전에 막강 영향력을 가진 거대 언론과 방송에 바란다. 그대들이 진심으로 화목한 가족, 건강한 가정을 바란다면 제발 ‘고개 숙인 아버지’니 ‘남편 기 살리기’ 따위의 동정심 구걸하는 기사 말고 ‘늙은 아담의 부엌’ 같은 기사를 실어라. 좀 발랄 참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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