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뉴욕·워싱턴 식탁에도 김치 수출”

86년 ‘김치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김치 제조회사를 창업, 김치의 산업화에 앞장서온 김순자(52) ㈜한성식품 사장. 그는 4월 29일 한국인사조직학회가 주는 제3회 여성경영인상을 받는다.

한국인사조직학회는 ‘김치가 세계인의 음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초석 마련, 김치업계 최초로 김치 제품의 표준화 실천, 끊임없는 연구개발’ 등이 김 사장의 수상 이유라고 밝혔다. 한성식품은 현재까지 의장등록 국내 2건·해외 1건·상표등록 30건·해외상표등록 4건·김치발명특허 60여 건을 등록하는 등 연구개발에 힘썼다. 올해 1월엔 한성식품의 대표 김치인 포기, 백년초백김치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실시하는 영양, 위해 요소 분석을 통과했다.

김 사장은 “훌륭한 여성 기업인들이 많은데 분에 넘치는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김치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김치를 좋아했다는 김 사장은 86년 정직원 1명을 채용해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열린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던 특급호텔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제가 만든 김치를 들고 특급호텔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고 현장에서 계약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호텔 주방에서 직접 김치를 만들어 손님상에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매출은 6개월간 300여 만 원에 불과했지만 “김치가 맛깔스럽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창업 이듬해에는 2억 원 정도 김치를 팔았고 89년엔 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 사장은 “당시엔 영업사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 있어 모든 직원이 김치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고 회상했다.

90년대 중반까지 한성식품은 김치 판매 순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98년 외환위기도 ‘저가로 맛있고 질 좋은 김치를 판다’는 전략으로 가뿐히 넘겼다. 오히려 매출은 전해에 비해 40% 정도 늘었다.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은 지난해 12월 일어난 김치파동이었다. 하루 140t에 달하던 김치 판매량이 5분의 1로 줄었다. 매출액이 급감하는 등 사업 19년 만에 맞은 최대 위기였다.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수를 대폭 줄이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최대 800여 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250명으로 줄었습니다. 창사 20주년 행사는 미국 주요 도시에서 하자는 계획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김 사장은 최근 자금 사정이 나아져 직원 수가 다시 40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안에 ‘세계 속의 한국 김치’를 목표로 러시아에 김치를 수출하고 뉴욕·LA·워싱턴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외국인의 성향과 입맛을 고려해 그들이 싫어하는 독특한 김치 냄새, 짠맛 등이 빠진 아름다운 김치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개발돼 있는 깻잎양배추말이 김치, 미니롤보쌈김치, 미역김치, 황제김치 등은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등 시각적인 다양성을 가미해 신선함을 주고 있다.

김 사장은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수료했으며 2002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명예식품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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