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건축·기계·전자·IT 분야

공학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정보기술(IT), 건축 분야에 집중돼 있고, 기계·전자 분야 진출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정이다.

교육통계연감에 따르면 공학계열 여학생 졸업 비율이 99년 17%에 머물렀으나 2000년 18.4%로 올라선 이래 2002년 이후 19%대(2002년 19.9%, 2003년 19.1%, 2004년 19.3%, 2005년 19.8%)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 공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에 따라 한국공학한림원은 창립 10여 년 만에 여성 정회원을 받아들였다.

지난 1월 김명희 이화여대 컴퓨터학과 교수와 최순자 인하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가 첫 여성 정회원으로 선출된 것.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한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현재 5명의 여성 연구원을 2015년까지 최대 220명 더 채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KIMM은 2002년 전국 45개 대학 이공계를 중심으로 공급 인력을 조사해 여성인력 현황을 분석한 바 있으며, 미국 MIT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내 한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해외 채용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반면 2005년 교육통계연감을 보면, 컴퓨터·정보통신계열 여학생 비율이 28.

54%(5549명), 건축공학이 27.46%(1931명)로 비교적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기계공학(4.4%, 307명)과 전기공학(4.7%, 72명)은 5% 미만의 저조한 진출을 보였다. 과학기술부의 2005년 과학기술연구개발활동조사에 따르면 공학계열 여성 연구원 1만1381명(전체 2만5198명) 중 전기·전자·통신 분야가 22.18%(5590명)로 단연 앞섰으며, 토목·건축 2.14%, 기계·선박·항공 2.04%, 금속재료 1.51%에 불과했다.

이 분야 여성단체 역시 여성인력의 진출이 활발한 건축·IT분야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원 수 129명), 한국여성건축가협회(250명), 한국IT여성기업협회(100명), 한국여성정보인협회(약 1000명)가 대표 단체이다.

이에 대해 박덕희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넷포유 대표이사)은 “여학생들이 진로 선택 시 교사나 부모의 권유로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직종을 피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IT계에 많이 진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고급 두뇌와 부드럽고 유연한 감성을 중시하는 지식기반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앞으론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축 분야는 여성 진출의 역사가 짧다 보니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들이 각 분야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다. 김혜정 명지대 교수(한국여성건설인협회 초대 회장)는 건축과 첫 여성 교수이며, 건축 분야 면허증과 관련해선 교통기술사 여성 1호 김설주 한국여성건설인협회 회장(청석엔지니어링 상무),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여성 1호 김경희 차림설계기술 소장, 건축구조기술사 여성 1호 서현주 건설기술네트워크 소장이 있다. 이 밖에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는 산본 신도시 설계와 94년 타임지의 ‘21세기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전자·IT 분야에선 다양한 교육매체와 컴퓨터 교육을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김명숙 이화여대 교수(한국여성정보인협회 회장), 정보통신부로부터 ‘마스터 PM(Project Manager)’으로 위촉돼 IT 차세대 성장동력 연구사업을 관리하는 송정희 정통부 IT정책자문관이 대표 인물이다.

아울러 2001·2002년 IT국제표준화 전문가 100인에 선정된 안혜연 넷피아닷컴 부사장, KAIST 수석 졸업·미국 MIT 최연소 박사로 화제를 모은 윤송이 SK텔레콤 상무, 바이오·화학기반 IT 핵심부품 전문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보호연구단의 정명애 생체센서연구팀 팀장, 한국IT의원연맹 초대회장과 정보통신대학교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운나 전 국회의원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IT업계에는 소프트웨어업체 버추얼텍의 서지현 사장, 게임업체 컴투스의 박지영 사장, 디지털 계측기 전문업체 이지디지털의 이영남 대표 등이 스타급 여성 기업인으로 꼽힌다.

이밖에 박수경 박사는 KAIST 기계공학과 설립 34년 만의 최초 여성 교수로, 이영옥 한전 기계기술처 처장은 원자력 안전에 관한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남성적 학문 ‘옛말’…정보과학·IT 등 다양
■ 여자대학의 공학 교육
우리나라 4년제 여자대학 중 공과대를 설치한 곳은 이화여대가 유일하다. 다른 여자대학에서는 ‘정보과학대’ 등의 이름으로 단과대가 존재하지만 IT 분야에 집중돼 있을 뿐이다.

이화여대 공과대엔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 건축학부, 환경·식품공학부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 전공은 자연과학계열의 전공에 이미 설치돼 있던 전공을 이전한 것이다.

이화여대는 공과대 설치 당시 남녀공학 공과대학에서 여학생의 선호도·여학생 친화적 전공, 취업 현황이 유리한 전공을 선택해 특성화했다.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가 각각 정보공학, 정보과학, 정보미디어대학을 설치했으며, 이들 대학 내엔 컴퓨터, 인터넷·데이터정보, 멀티미디어, 콘텐츠 디자인 전공을 두고 있다.

성신여대엔 자연과학대 내에 컴퓨터정보학부와 미디어정보학부를 설치했으며, 숙명여대 역시 이과대학에 정보과학부(컴퓨터과학·멀티미디어과학 전공)를 두고 있다.

여성 공학자들은 공학이 남성적 학문이란 인식 때문에 여학생들이 지원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여자대학에서 공과대를 설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명숙 한국여성정보인협회 회장(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컴퓨터교육 전공 교수)은 “공학 분야는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이라며 “여자대학에서 여학생 친화적이고 여학생의 특성에 맞는 공학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지식기반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축·IT 분야 선구자
여성 공학계에선 네트워크가 결성된 건축·IT 분야와 달리 다른 분야의 경우 여성인력 데이터베이스나 자료가 잘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어서 보완이 요구된다.

우선, 57년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지순 간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는 65년 여성으로서 첫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에겐 ‘최초’ ‘초기’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초기 작품인 종로구 창신동 양지회 건물은 여성 건축사가 지은 한국 최초 건물이다. 그가 70년 설립한 일양건축공방(현 간삼종합건축사사무소)은 여성 건축사가 세운 최초의 건축설계사무소다. 한국은행 본점 건물, 동숭아트센터, 포스코센터를 설계했으며 한국여성건축가협회를 창립, 회장을 역임했다.

81년 서울대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기호 한국여성정보인협회 이사장은 96년 이화여대에 세계 최초로 여자대학 공과대를 설립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이어 공과대학장을 역임했으며, 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국무총리실), 한국여성개발원 자문위원, 서울시 정보화 자문위원, 정보통신부 정책심의위원, 국가기관 전산망 기획조정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2001년엔 한국과학재단의 ‘올해의 여성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다.

과학자들의 허스토리 /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죽음의 의미를 가르친 삶의 스승

스위스와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가진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 1926∼2004) 박사는 ‘죽음’의 스승인 동시에 ‘삶’의 스승이기도 하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69년 내놓은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면서 그는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에 관한 책을 9권 출판했다.

그는 삶의 다음 단계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로 인해 죽음의 수용이 아니라 예방에 힘썼던 다른 의료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이 여성은 저서에서 말기 환자의 마음 상태를 알려주었고 삶의 마지막 길과 슬픔의 과정에 대한 지도를 그려주었다. 그의 삶과 사고는 늘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그가 미친 영향은 확실히 존재했다.

세계 주요 대학에서 25개가 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현대의 사마리아인 상’ ‘이상적인 시민상’ 등을 수상한 그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 쌍둥이 중 가장 체중이 작게(2파운드, 약 1㎏) 태어났다.

2차대전이 끝나 아수라장이 된 유럽에서 20대의 젊은 그는 국제평화자원봉사대에 들어가 폴란드 및 독일에서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살아남은 유대인들과 패전한 독일인들이 삶을 추스르는 것을 도왔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온 그는 취리히대학 의대에 진학, 57년 학위를 받고 거기서 만난 미국 학생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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