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만의 희생·책임 아니다”
시급 4천 원으론 턱없이 부족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의 사회 참여 활성화와 함께 장애아 어머니들의 돌봄노동과 희생을 사회가 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활동보조인 서비스제도다.

그동안 장애아 어머니들의 돌봄노동은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은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과 함께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현실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는다. 이들의 가장 큰 고통은 돌봄노동이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없고, 그나마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집에서 돌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시설, 보호작업장에선 비교적 장애가 가벼운 장애인 위주로 선별해 입소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설에 갈 수 없는 중증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에게 돌봄에 대한 책임이 100% 돌아간다.

더군다나 장애인은 보험 가입이 힘들고, 장애아가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들이 이들을 계속 돌봐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생계를 계속 책임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장애아 부모들은 중증 장애 자녀라도 입소할 수 있는 복지관, 주간보호시설, 보호작업장의 수를 늘리고,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증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중증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도와줄 활동보조인을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가 절실하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2005년 6월부터 전국의 10곳의 장애인 자립생활시설을 선정해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시설당 총 1억5000만 원을 지급하며 활동보조인들은 시급 4000원을 받고 있다. 이 시범사업은 2007년까지로 예정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나와있지 않은 상황이다. 

4월 20일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 활동보조인 서비스제도화 투쟁위원회는 서울시청에서 이를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활동보조인 서비스와 관련된 법과 조례가 없는 상태에서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원에 이르는 예산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중증장애 복지시설조차 입소 꺼려요”
장애아 부모들 “돌봄의 사회적 서비스 절실”

활동보조인제도·장애인연금 도입 한목소리

“내 삶은 없어요. 밥 먹이고, 재우고, 대소변까지 받아내려면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에요. 생명이 위급할 때마다 일단 살려놓고 보자고 생각했지만, 위기를 넘기고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네가 하늘나라로 갔으면 너도 나도 그게 행복인데’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어요. 지금은 잘 자라준 딸이 고마울 뿐이죠.”

생후 4개월 열성 경기로 뇌손상을 입어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딸 한지은(20)씨를 키우고 있는 김용애(50)씨의 말이다.

장애아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한 돌봄노동이 사회적 지원 없이 100% 개인의 몫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꼽는다. 장애아 아버지들은 주로 자녀의 조기교육, 음악치료 비용을 비롯한 가족생계를 책임지고, 실제적인 자녀 돌봄은 어머니들이 맡게 된다. 더군다나 한부모 가정인 경우에는 생계와 자녀 돌봄을 모두 맡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 이주영(22)씨의 어머니 고옥자(50)씨는 “아이보다 먼저 죽었을 때 갈 곳 없는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 걱정된다”며 “돌보는 게 힘들다 보니 주영이 동생에게도 주영이를 책임져 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이들에게 더욱 더 큰 상처다. 다운증후군 은혜의 어머니인 만화가 장차현실씨는 “은혜가 초등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았는데 4학년 때 같은 학교 한 아이가 ‘은혜는 시험도 제대로 못 치는데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낫지 않나요?’하고 물어와 가슴 아팠다”고 토로했다. 장애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장애아를 받아주는 수영팀이 있는 학교를 찾아 부산으로 이사를 간 수영선수 김진호씨의 어머니의 사례처럼 거주 지역 내 교육기관의 시설 부족도 문제다. 지은씨의 어머니 김씨는 딸이 다니고 있는 신사동 광림주간보호센터까지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다니고 있을 정도다.

이와 함께 복지관, 주간보호시설, 보호작업장 등에서 비교적 장애 상태가 좋은 장애인을 선별하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20군데가 넘는 시설을 알아봤지만 걷기 힘들고 손으로 하는 기능이 잘 발달되지 않은 지은씨를 받아주는 곳은 현재 센터를 제외하고는 한 곳도 없었다고. 이와 함께 “중증 장애 자녀를 위해서 정부에서 일상생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도화·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장애아 부모들은 국가가 장애인연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언어치료, 미술치료 등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들어 경제적으로 어렵고, 부모가 죽은 후 자녀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매달 일정 금액의 연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영 광림주간보호센터 소장은 “국가가 장애인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이들의 어머니, 형제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애인 복지시설 실태

주간보호시설 전국 259곳 운영

주거가능 자립생활센터는 45곳 그쳐

‘주간보호시설’과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들의 자립과 장애인 가정의 안정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이다.

주간보호시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든 장애인을 낮 동안 보호해 장애인 가족의 보호 부담을 줄이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이다. 아울러 장애인을 대상으로 재활치료, 재활교육, 취미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8시 30분∼오후 6시 30분(토요일 오전 8시 30분∼오후 1시 30분)이며, 서울 은평구 구산동 서부장애인복지관, 동작구 신대방동 남부장애인복지관 등 각 지역 장애인복지관을 비롯해 사회복지법인이 전국적으로 259곳이 분포돼 있다.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혼자 또는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며 주거환경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살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들을 배우거나 터득하도록 하는 공동체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재활원, 송파구 거여동 서울자립생활센터 등 전국에 45곳이 있다.

활동보조인 지원·대상 늘려야
작년 전국 10곳 장애인시설에 시범사업 지원
중증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정부가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도화·확대할 것을 염원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2005년 6월부터 전국 10개(서울 3곳, 지방 7곳)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활동보조인이란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의 가사, 식사, 세면, 외출 등의 일상생활을 돕는 인력이다. 중증 장애인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도움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삶의 주체자로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지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원금액이 센터당 1억5000만 원에 불과하고 이중 일부를 센터 운영비와 실무자 임금으로 지급하는 상황에서 활동보조인 파견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적다. 올해 서울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활동보조인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조치를 단행해 중증 장애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또 지난해 활동보조인의 시급이 3500원이었지만 물가변동에 따라 올해는 500원을 추가 지급하게 했다. 이는 정해진 예산 내에서 사업이 집행되는 만큼 장애인에게 돌아갈 서비스의 양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문제는 여전히 당사자와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장애인이 고용주 입장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자원봉사자 이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장애인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을 포함해 순차적으로 그 지원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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