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움직인 ‘부드러운 힘’

괄목할 만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이루었던 옛 소련이 붕괴되자 신생국 러시아에서의 여성의 정치활동 공간은 무척 협소해진 것처럼 보였다. ‘순수한 여성의 임무’가 강조되고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기’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팽배한 가운데 러시아 여성들은 옛 소련 시절 그들이 누렸던 혜택마저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더욱이 체제 전환기의 경제적 혼란과 경기침체는 여성들을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일부 예견과는 달리 93년 두마(제정 러시아 의회) 선거에서 여성들만의 정치조직 ‘러시아의 여성’이 총 23석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선전하자 러시아 여성들의 높은 정치참여 수준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러시아 여성들은 이후의 국가 두마 선거에서 이에 필적할 만한 정치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95년, 99년, 2003년 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나 여성 정당들이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여성은 여성을 지도자로 선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검증되지 않은 통념으로 러시아 여성들의 투표 행태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은 여성을 싫어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05년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3분의 2 정도가 여성도 러시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따라서 의식 있는 러시아 여성 활동가들이 지적했듯이 현재 러시아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는 유능한 여성 정치 리더십의 발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Valentina Matvienko)는 차세대 러시아 여성 정치 지도자로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1949년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세포토브카에서 출생한 마트비옌코는 옛 공산체제의 엘리트 충원 과정을 통해 등용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레닌그라드 약학대학 졸업 이후 공산당 관료로 활동했던 그는 80년대 후반 레닌그라드시 인민의원 소비에트 부위원장(지금의 시의회 부위원장에 해당), 소련 최고회의 여성문제위원회 위원장, 소련 인민위원을 역임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마트비옌코는 변화하는 러시아 정치 지형에 맞추어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한 마트비옌코는 몰타 주재 대사 및 그리스 주재 러시아 대사로 임명되어 외교관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옐친과 푸틴 대통령에 의해 러시아 정부 부총리에 임명되어 맹활약을 했다.

이러한 경력을 배경으로 마트비옌코는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유권자 63%의 지지를 받아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고르바초프, 옐친, 푸틴 시기를 걸쳐 계속적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여성적 리더십에 있다. 마트비옌코는 정치적 결정을 과감하게 하는 정치 지도자이면서도 세련되고 부드러운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상실하지 않았다.

향후 마트비옌코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의 자리를 넘어서 정치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러시아 여성의 정치 재세력화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로 떠오를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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