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학 분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수학자는 누구일까. 18세기 조선시대 기록에 나타난 ‘서영수각’(1753∼1823)이 아닐까 싶다. 그는 개평방(제곱근 풀이), 방정식 등 난해한 공식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새롭게 고안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서영수각’의 후예인 현대 여성 수학자들은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와 학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학계 이외 분야에 진출한 여성인력의 통계가 파악되지 않아 이 분야에 대한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13개 대학 수학·수학교육 등 관련 학과 졸업 여학생은 1700여 명이며 이 중 49.47%가 취업을, 19.58%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또 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여성 연구원 2만5000여 명 중 수학·전산 관련 연구원은 1500여 명(6.18%)이며, 기업체 1052명(67.61%), 대학 469명(30.14%), 공공연구기관 35명(2.25%) 순으로 분포돼 있다.

이에 반해 학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수학자 대부분이 대학 교수들로 파악되고 있다. 대한수학회의 여성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2004년 창립한 한국여성수리과학회의 회원 203명 중 88.7%(180명)가 대학 교수다. 다음으로 중·고교 교사 6.9%(14명), 정부출연연구소 3.4%(7명), 기업체 1%(2명)로 나타나 교직에 편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표적 수학단체인 한국수학교육학회와 한국산업응용수학회에 각각 1200여 명, 25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여성 회원에 대한 통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수학은 금융·생물수학 등 융합학문으로 확장되고 있다”면서 “이 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이 늘고 있고 산학 협력 연구가 필요함에 따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학은 대수학, 위상수학, 해석학, 기하학 등 순수수학과 수치해석학, 암호학, 금융수학, 조합론 등 응용수학으로 나눌 수 있다. 순수수학엔 고계원 아주대 교수, 위인숙 고려대 교수(한국여성수리과학회 회장), 이혜숙 이화여대 교수, 장선영 울산대 교수 등이 대표 인물이며, 응용수학엔 김서령 서울대 교수, 이향숙 이화여대 교수, 최영주 포항공대 교수 등이 있다.

미국 브린모어대 종신직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91년 귀국한 고계원 교수는 한국여성수리과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됐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혜숙 교수는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돕는 WISE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 여성 과학기술인 양성과 권익 신장에 기여하고 있다. 2003년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과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외에서 40여 편의 연구논문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장선영 교수는 선형대수학과 작용소대수 권위자로 2003년 ‘후스 후 인 더 월드(Who's Who in the World)’와 2004년 ‘후스 후 인 더 사이언스(Who's Who in the Science)’에 등재된 바 있다.

최영주 교수는 21세기 수학의 최대 난제인 보형형식 이론 연구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분야 응용연구 결과가 높이 평가돼 지난해 ‘올해의 여성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재단 우수 연구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 수학과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계영희 고신대 교수, 수학교육 분야 연구와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연구조사에 전념하고 있는 김완순 호서대 교수, 수학을 기초로 한 정보통신 원천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는 위인숙 교수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 수학 분야 선구자들

최초의 여성 수학 전공자는 1944년 히로시마 문리과대학 수학과를 마치고 광복 직후 경성대학(서울대학교 전신) 교수로 근무한 홍임식(1916∼ ) 박사다.

니혼대학에서 정년퇴임한 홍 교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소식을 접한 고계원 교수에 의해 국내에 알려졌다.

국내에서 활동한 초기 과학자로는 송순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사공정숙 전 고려대 교육대학원장을 꼽을 수 있다. 해석학을 전공한 송 명예교수는 초·중·고 수학교육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한국수학교육학회 부회장·한국수학사학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활발한 학회활동으로 ‘여성 수학자’ 역할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 세대로는 후학 양성에 매진한 정재명 서울대 교수와 홍영희 숙명여대 교수가 있으며, 특히 정재명 교수는 대수적 구조론을 전공하고 이 분야 연구 결과를 국내 유수한 학술지에 20여 편을 발표하는 등 국내 수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학자들의 허스토리

컴퓨터학계의 전설 아니타 보그

여성공학인 단체 조직, 여성을 위한 기술 설파

“여성들 간의 우정은 디지털이다”라는 구호를 만들고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기술의 관계를 재구축하는 운동을 벌인 아니타 보그(Anita Borg, 1949∼2003)는 컴퓨터학계의 전설이다.

컴퓨터학에 좀 더 많은 여성을 유입시키기 위해 보그는 컴퓨터학이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컴퓨터 관련 물품 개발에 좀 더 많은 여성이 개입돼야만 진정 더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여성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전 세계 여성들에게 기술의 긍정적 영향을 증대시키기 위해 그는 97년 ‘여성기술연구소(IWT, Institute for Women and Technology)’를 설립했다. 그는 “IWT는 제품개발의 모든 단계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여성들의 의견을 그저 모아서 백인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개발팀에 넘기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야심 차게 말했다. “만약 30세 여성들만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기술은 단지 13세 소녀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소년들이다. 그러므로 지난 20년간 여성들이 정치에 힘을 넓혔듯이 이제 여성들은 다음 20년간 기술에 힘을 신장시켜야 한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보그는 대학 2학년 때 대학원에 다니는 남편을 부양하느라 학교를 중퇴하고 보험회사 전산부에서 일했는데 그때 전산에 매료되어 혼자서 코볼(COBOL)을 공부하고 프로그램을 했다. 얼마 후 이혼한 그는 뉴욕대학 컴퓨터학과로 복귀하고, 뉴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뉴저지의 오라겐 시스템스와 독일의 닉스도르프 컴퓨터 회사에서 일했다. 고속 메모리 시스템의 성과분석 방법을 개발, 특허를 냈다.

99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보그를 ‘여성 및 소수민족 과학기술 발전위원회’에 임명했다. 그는 전자프런티어재단의 선구자상, 여성컴퓨터협회에서 주는 에이다 러브레이스상, ‘기술, 경제, 고용의 하인즈 상’을 수상했고 98년에는 여성 명예의 전당 국제기술부문에 입성했다.

정열적인 스포츠인이며, 모험가이기도 한 그는 70년대 후반엔 오토바이가 취미였고, 80년대에는 급류에서 카약을 탔으며, 90년대에는 경비행기를 손수 조종했다. 뇌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팔로알토에 언덕에 있는 회사까지 매일 아침 35분간 경사로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50세 생일에는 로큰롤 밴드를 불러 귀청이 찢어지도록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파티를 했다. 여성다움과 열정적인 성격을 감추려 하지 않았던 그 덕분에 여성 공학인들은 남성들을 모방하거나,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편안할 수 있음을 배웠고 그래서 안심했다고 한다. 그가 입던 티셔츠에는 ‘예의바른 여자는 역사에 남지 않는다’란 말이 쓰여 있었다.

[진우기 / 번역작가·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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