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 과학기술 인력 DB의 중요성

여성 과학기술계는 최근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활발한 연구성과를 보이고 있음에도 그 업적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점동’이 탁월한 업적을 남긴 과학기술인을 기리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로 추천됐지만 최근 최종 확정 발표 결과 아쉽게 제외된 것이 대표적인 예.

이에 대해 여성 과학기술계는 근·현대 여성 과학기술 선구자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 부족,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미흡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신문은 이번 기획에 대표적인 여성 과학기술단체장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자 한다.

이들은 이번 기획 연재에서 분야별로 포괄적인 인력풀을 다룬 뒤 이들의 성과를 종합 정리할 필요가 있으며,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 연구 활동 중 애로사항이나 문제점 등을 해결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대상으로 여성 과학기술계 지형도와 네트워크 파악을 위한 광범위한 설문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다음은 5개 여성 과학기술단체장들이 기획 연재 ‘근·현대 여성 과학기술 리더들의 업적과 지형도’에 대해 제시한 의견들이다.

“위원회 등 적재적소 인물 추천 가능”

전길자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장은 “분야별 최초의 여성 박사들에 대한 자료 발굴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사업을 계속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기획은 각 분야 단체에서 선구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발굴과 자료 정리 사업을 실시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특히 “중견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DB 구축은 과학 관련 각종 위원회와 시상식 등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물을 추천할 수 있는 인력풀을 확보하는 것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역할모델 제시로 우수 인력 유입될 터”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초기 여성 과학기술계에 대한 자료 발굴과 정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문화유산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일”이라며 “묻혀 있던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젊은 과학도들에게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있고, 더 많은 우수 인력이 유입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또 “여성 과학기술인들 전체를 DB로 구축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우선 DB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한 뒤 보완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발전 저해요인 분석결과 정책에 반영”

유영숙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은 “근·현대 과학기술인에 대한 자료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업적을 발굴하는 일은 의의가 크다”고 전제하고 “분야별로 많은 여성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포괄적인 인력 데이터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여성 과학기술계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을 분석해 그 결과를 사회·문화 정책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요 인물 파악 위한 설문조사 필요”

박영아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2002년 물리학회에 여성위원회가 설치된 후 네트워크 구축과 DB화의 필요성이 대두돼 왔으나 관련 사업 추진이 미진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번 기획을 계기로 학계를 선구적으로 이끌어온 여성에 관한 체계적인 자료 정리 및 사료 발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야별 지형도와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은 방대하고 힘든 작업”이라고 지적한 박 위원장은 “여성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주요 인물과 업적을 분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성공·실패담 등 진솔한 이야기 담아야”

박종옥 대한화학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분야별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명단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기획은 미래 여성 과학인의 양성과 확보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여성 과학자들의 성공·실패담 등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여성 과학기술계 전체 업적을 종합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여성 과학기술계 DB 구축 사업 현황은

여성 과학기술계는 대학·단체를 중심으로 초기 과학기술인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핵심 인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이화여대는 2002년 창학 116주년 학술세미나 ‘한국 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 발굴’에서 분야별 선구자들을 찾아내 발표했다. 한국 첫 여성 과학자가 김점동이란 사실도 이때 밝혀졌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는 2000년부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함께 ‘여성과학기술인력 DB’(i2s.kisti.re.kr/∼woman) 구축 사업을 벌이고 있다. 6차연도 사업이 끝난 지난해 11월 30일까지 7716명이 등록됐다.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는 지난해 ‘커리어 센터’를 개설하고, 신진 여성 과학기술인과 중견 여성 과학기술인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DB는 한국학술진흥재단·한국과학재단의 인력 DB인 ‘통합연구인력정보’(rm2.kosef.re.kr/index.jsp)와도 연계, 취업 알선·정책자료 제공 등을 수행하고 있다. ‘통합연구인력정보’에는 현재 1만3456명의 여성인력이 등록돼 있다.

지난해 4월 창립된 대한화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 박종옥)는 첫 사업으로 화학분야 고급 여성인력을 발굴하고 주요 인물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그 결과를 오는 9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여성위원회 회원 수는 724명이다.

과학자들의 허스토리

1세대 줄기세포 연구학자 셜리 틸먼

프린스턴대 255년 만에 첫 ‘여성총장’에 올라

2001년 9월 15일 분자생물학자이자 여성 과학자인 셜리 틸먼(Shirley M. Tilghman)은 미국 뉴저지주의 명문사립, 영국의 더 타임스지가 세계 8위 대학으로 분류한 프린스턴대학 총장에 취임했다. 개교 255년 만에, 그리고 프린스턴이 여학생 입학을 허가한 지 32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총장이 나온 것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틸먼은 68년 온타리오주 킹스턴의 퀸스대학에서 화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서아프리카에서 중등학교 교사로 2년간 근무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75년 템플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 보건국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이곳에서 그는 1세대 줄기세포 연구학자로서 포유류의 배아 성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남녀의 게놈(Genom)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배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86년 프린스턴대학에 첫발을 디딘 틸먼은 98년 대학에 속한 루이스-싱글러 통합유전체학연구소에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게놈 지도를 그리는 인간유전체사업의 청사진을 기획하는 국립연구협회에서도 활약을 했다. 그는 또 이 협회 소속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98년 ‘생명과학자의 직업 동향’이란 연구결과를 발표,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특히 여성 과학자들을 위해, 또 젊은 과학자들이 의미 있고 생산적으로 연구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93년부터 8년간 대학의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독려해왔고, 프린스턴대학에 박사후과정 강사 펠로십을 설치하는 등의 공로로 96년 프린스턴대학 총장으로부터 우수 교수상을 받았다. 2002년엔 로레알-유네스코 국제여성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총장 취임 연설을 한 시기는 9·11 테러가 난 직후였고, 또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서 테러에 맞선 전쟁을 선포한 때였다. 충격에 휩싸여 취임사를 다시 쓴 그는 “이런 위기의 시대 국가가 세계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고자 할 때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대학이 더 이상 상아로 만들어진 고립된 탑이 아니라 양 방향으로 소통·확산되고 있는 곳, 세상과 분리된 곳이 아니라 세상의 대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우기 / 번역작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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