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지평’ 남대문로 이전 개소식…50여 명 취재진 몰려

지난 7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의 남대문로 상공회의소 빌딩 11층의 사무소 이전 기념 리셉션장은 식전부터 50여 명의 기자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는 기자회견장이 돼 버렸다.

강 변호사는 새침스러울 정도로 말을 아꼈지만 마지못해 기자들에게 ‘선물’을 하나 주기는 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국민들이 너무나 궁금해 한다”며 기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서울시장 출마) 결심이 섰느냐”는 질문에 “너무 관심들이 많으시니까 3월 안에는 말씀드리죠”라는 답변이 그것.

리셉션이 시작되는 저녁 5시 정각에 나왔다가 기자들이 몰려들자 황급히 몸을 피한 강 변호사는 이후 얼마 안 돼 손님들을 맞기 위해 다시 나왔으나 취재기자들과 카메라에 포위돼 한 걸음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인의 장벽에 갇혀버렸다.

그는 “아니, 왜 이렇게 많이 오신 거예요?” “사무실 일이라 제 일하고 연결 안 시켰으면…” “오늘은 사무실 이전식이라 제 개인문제를 말하기는 적절치 않아요” 등 기자들에게 연신 취재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기자들의 집요하고 짓궂은 질문을 재치 있게 받아 넘기는 모습은 여전했다.

서울시장 출마설을 염두에 둔 “시청 옆이라 사무실 옮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에 있던) 사무실이 좁아서”라고 운을 뗀 후 “여기가 옛날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돈 많이 벌려고 왔는데 휘말렸다”고도 했다.

▲ 법무법인 ‘지평’ 이전 개소식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곤혹스러워 하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아직도 장고 중임을 시사했지만, 3월 안에는 출마 여부를 밝힐 계획이다. © 정대웅 기자

“한 말씀 해주십시오”라며 취재진이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그만하시나?”라며 “질문 두 가지를 받겠다”고 한 발 물러났다. 즉석에서 포토라인이 정해졌지만 “당에서 다음주쯤 결정한다는데” “3월이라 말씀하셨는데, 곧 중순 됩니다” “여성들을 위해 출마해 주세요” 등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된 예민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래도 그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약속은 지켰다.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한) 고민은 끝나셨나요?”라는 질문에 “인생에 고민이 끝날 날 있겠어요?”라며 즉답을 피한 데 이어 “고민이 많으시다 했는데, 인생 최대의 고민은 뭐세요?”라는 질문엔 “기자님은 뭐 고민하세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연애는 안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연애할 기회를 안 주시잖아요”라고 응수하기도.

전날 보도된 서울시장 출마 상담을 위한 가족회의설엔 “가족회의가 뭐예요?”라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이 그에 대해 “강금실 전 장관이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시 공무원들이 좋아할 것이다. 강 전 장관은 노는 것,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무원들이 매일 놀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엔 손사래를 치며 단호히 “이제, 그만”을 외치기도 했다.

강 변호사와 취재진과의 밀고 당김은 방송용 멘트와 사진취재용 포즈 잡기 부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방송용에 적합하지 않다며 다시 한번 멘트를 반복해 달라는 요청에 강 변호사는 “말을 또 반복하기 어렵잖아요”라고 하는가 하면 “악수 한번 하고…” 포즈 요청에 “아무도 안 오시네요” “손님들이 안 오고 다 가잖아요”라며 연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강요받으면서 서울시장 출마 압박과 이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듯 “(주인공 앤서니 퀸의 묘한 미소가 인상적인) 영화 25시의 라스트 신 같다”고 빗대기도 했다.

기자들도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면서도 미안한 듯 “서 계시니 어색하시죠?”라며 말을 건넸고, 강 변호사 역시 “이제 기자 그만 하시고 손님으로 오세요. 식사하시고 가시죠”라며 “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기자회견 아닌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취재를 했던 기자들도 계면쩍은 듯 “이렇게 재미있는 취재는 처음 본다” “이거 자체로 돌발영상 해도 되겠다”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지평’ 행사 진행 측은 여전히 사무실 복도를 메우고 있는 기자들에게 “강 변호사만 있는 사무실 아니니 그만하시죠” “기자분들 때문에 다른 분들이 못 들어와 식을 진행 못한다”고 연신 애로를 토로했다. 최근 한나라당으로 이적한 김학원 전 자민련 대표도 내빈으로 왔다가 “오늘 장사 안 되겠다, 기자 손님들이 많아가지고”라며 놀라는 분위기.

강 변호사가 법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지평’ 대표 변호사였던 파트너 조용환 변호사는 “이미 ‘지평’ 내에서도 강 변호사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사무실에선 아무 얘기도 안 하기로 했다”며 “사람들이 다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얘기하는 것 같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번에 800평 규모의 사무실로 옮겨 새 출발을 하는 법무법인 ‘지평’은 강금실 변호사와 법무법인 ‘세종’ 출신의 변호사 10여 명을 주축으로 2000년 설립됐다. 현재 50여 명의 국내외 변호사가 합류해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으로 급성장 중이다.

이날 개소식엔 강 변호사의 법무부 장관 시절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여성인권 향상에 보조를 맞췄던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현 덕성여대 총장), 최경환 전 법무부 장관, 심재륜 전 대전고검장, 박경서 유엔인권대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의외로 정계 인사들의 참석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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