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정 움직임

지금 유엔에서는 새로운 국제적 기준을 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하고 있는 것이다.

3년 전에 논의를 시작해서 올해 2월 초까지 모두 일곱 번의 준비회의를 거쳤다. 올해 8월에 8차 회의를 하고 나면 아마도 내년쯤에는 합의가 이루어져 유엔총회에서 채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가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 장애인권리협약 준비회의가 옆에서 개최되어 귀동냥을 하면서 몇 번 그쪽 논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7차 회의에서 특히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장애 여성 관련 조항을 따로 둘 것인가, 일반조항에 포함시켜 주류화할 것인가였다. 여성 장애인의 문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제대로 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조항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정부의 입장이고 이를 지난해 1월에 제안했다. 반면 유럽연합(EU) 쪽에서는 교육, 취업, 폭력 등 협약의 각 초안으로 분산시켜 넣어 각 정책 속에 주류화해야 한다는 대립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성평등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나는 별도조항과 주류화가 모두 필요함을 역설했다. 성주류화는 북경대회 이후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교육권, 이동권, 취업권 등을 요구할 때 여성 장애인의 문제도 각 조항에 함께 포함시켜 확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한편 주류화를 협약에 명시하는 것만으로 모든 부처에서 다 잘 알아서 여성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양성평등의 문제가 제도나 의식면에서 아직 주류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 각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여성 장애인 조항이 별도로 없다면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마저도 여성 장애인의 문제를 제대로 챙길지 의문이다.

각각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의 개발과 함께 지지를 얻기 위한 로비활동, 그리고 타협안 제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대로 각국의 전문성과 외교력, 그리고 열정을 시험하는 국제정치의 무대였다. 3주간의 7차 회의가 끝나갈 무렵에는 주류화와 별도조항 모두를 수용하는 ‘two-track approach’가 좀 더 지지를 확보해 가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열심히 활동한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깨에서부터 양팔이 전혀 없이 발가락으로 서류를 넘기며 여성 관련 조항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애쓴 독일의 테레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정부를 대표해 활동하고 발언하여 대회장 전체에서 유명해진 이익섭 교수님과 10여 명의 정부 및 NGO 대표들, 휠체어로 유엔본부 곳곳을 누비며 열심히 활동한 여성 장애인 김미주, 김광희 대표를 보며 가슴 뿌듯했다.

아 참, 삼성에서 이익섭 교수님을 위해 파견해 준 안내견 ‘파도’도 빼놓을 수 없다. 얌전하게 발치에 누워 있다가 이익섭 교수님이 발언할 때는 고개를 들고 경청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마무리 멘트가 끝나자마자 다시 눕는 모습은 어찌나 영리하던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