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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여름 ‘보병 ○사단 ○부대’에 소속되었던 그 불운했던

병사는 ‘장렬한 전사’를 했노라는 군측의 연락과 함께 얼마간의 보

상금과 작은 상자속에 담긴 유골만으로 귀국했다. 물론 민홍은 아빠

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성애가 무엇인지 몰랐건만 아

이는 선물을 한 아름 사가지고 돌아올 기다림의 대상을 잃었다는 게

무척 슬펐다. 그래서 아빠의 죽음은 열흘동안 주검처럼 앓아누웠던

어머니의 흐느낌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경험되었을 뿐이었다. 그러

나 ‘우리 아빤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불쌍한 월남사람들을 위해서

싸우시다가 베트콩에게 희생되셨다’라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이

특유의 미화된 인식은 민홍이 대학생이 된 뒤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소설때문에 깨졌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소설가가 예리한 필치로 쓴

그 소설의 한 대목은 민홍이 아버지의 사인(死因)을 추측할 만한 단

서를 제공해 주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죽음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물론 소값을 물어준 다음에도 우리들은

월남에서 줄기차게 땅을 팠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흐느적거리며 끝

없는 나날을 지내다보니 전쟁은 실감도 나지 않았다. 런?어느 날

병사들이 죽어갔다. 31포대에서 혼헤오산에 위협사격을 하다 포를 너

무 쏘아 포열이 쪼개져 사수가 죽거나 수색 정찰을 하다 부비트랩에

걸려 폭사를 하는 등 처음 한 달 동안에 사단 전병력 가운데 열아홉

명이 죽었다. 그 열아홉명 가운에 베트콩과 싸우다 죽은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한국의 휴전선만큼도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데 열아홉명이

나 죽었다니 우리들은 아무도 그 얘기를 믿지 않았다. 죽어라고 땅만

파는 우리들에게 ‘전사’라는 거창한 단어가 현실감을 자극할 리가

없었다. 죽는 것도 우습고, 사는 것도 우스웠다. 잔뜩 눈을 부릅뜨고

겨눈 목표물이 갑자기 바위 뒤로 사라져버린 듯 허탈한 비논리성에

우리들은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안정효작 고려원 발간 '하얀전쟁'

61페이지에서 발췌)

민홍은 그 소설을 읽은 순간 심장께가 내려 앉았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 ‘베트콩’과 싸우다 전사한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의 몇몇 주인

공들 처럼 ‘줄기차게 땅을 파거나’ ‘베트콩의 저격을 받지 않으려

고 일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다 짚차가 엎어지거나’ ‘지뢰를 밟

다’가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탓이었다.

瀏??그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써 긍정하고 싶은 그녀의 치기

어린 꿈을 빼앗아간 것만은 아니었다. 잃은 것도 있었지만 얻은 것도

있었으니까. 그녀가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추측함으로써 얻었던 것은

안도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베트콩’이든 월남인이든 간에 적

어도 사람을 살해하기도 전에 그 스스로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으리라

는 사실때문이었다. 결국 그 소설의 내용으로 미뤄볼 때 그녀의 아버

지는 국가 대 국가의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한 역할을 떠맡기도

전에 폭력의 희생자로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농후했던 것이다. 그

녀는 폭력의 희생자로서 아버지의 사망을 뒤늦게 애도할 수밖에 없었

다.

그러나 그뒤 민홍은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

고간 원인이 미국의 월남전 개입은 물론이고 한국이 자신의 권력유지

를 위해서 한국 군인들의 생명쯤은 뒷전에 둔 채 일부 국군을 월남에

파병했던 박 정권의 폭력성외에도 다른 폭력이 한국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폭력이란 그녀의 아버지와 일부 국군을 파월장병으로

나서게끔 몰아갔던 한국인 개개인과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가난이

었다. 그러나 백석기씨 사망의 배후에는 가난외에도 또 다른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외아들을 간접적으로 전쟁터로 떼민 백석기씨 부모

의 며느리에 대한 인간 차별-즉 가난하고 약자를 멸시하는 일부 기득

권자들이 지닌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만-이라는 폭력이 바로 그것이

었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성의 초라한 신분과 생명을 멸시했던 백씨

집안의 사람 차별과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우월감이야말로 어쩌면 눈

에 보이는 폭력 못지않게 더 깊고 장기간에 걸친 비극을 초래했을 것

이었다. 그 무형의 폭력이 남긴 후유증은 각기 남편과 아버지를 잃었

던 민홍 모녀의 고적한 삶을 통해서 오늘도 그 위세를 여지없이 과시

하고 있었다.

그 이유때문이었다. 민홍이 그 폭력의 희생자인 어머니가 흐느끼는

울음을 듣는 것을 그토록 꺼리는 이유는. 말뿐인가. 민홍은 당신의

인생을 희생자의 자리에 놓아 둔 격인 어머니의 피해자적인 삶에 깊

은 모멸감을 느껴온 터였다.

침대위에서 엉거주춤 앉아서 상념의 덫 속에서 마냥 헤매던 민홍은

다음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 턱과 어금니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통증

탓이었다. 아차 싶었다. 무의식중에 잔뜩 긴장하거나 누군가에게 분

釉?느낄 적마다 어금니를 꽉 물곤 하는 나쁜 습관의 산물일 터였

다. 턱언저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이렇게 늑장을 부

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벌써 여섯시였기에. 그녀는 창밖을 올려

다 보았다. 아직도 깜깜했다. 그래 1월의 새벽은 젖가슴을 부끄러워

하는 새색시 마냥 아직도 여명(黎明)을 품 속 깊이 감추고 있겠지.

민홍은 삭막해진 심기를 위해서 어거지 시심(詩心)을 발동하면서 잠

옷위에 스웨터를 걸쳐 입었다. 마음이 급했다. 일곱시 이전에 학교

도서관에 도착해야만 그나마 마음 편히 취업준비를 할 수 있었고 오

후에는 ○방송국에 가서 피디(PD)입사응시원서를 제출해야 했다. 뿐

인가. 또한 늦은 오후에는 강한성 선배가 다시금 청한 저녁 식사에

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지난 년말 조부의 상(喪)을 당하자 약

속을 뒤로 미룬 탓이었다.

마당 귀퉁이에 있는 간이 욕실로 나갈 셈으로 그녀가 급히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둔중한 물체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민홍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휴, 정말! 민홍은 혀를 찼다. 책상위에

놓아 둔 가방이 책가지 등을 몽땅 토해 놓은 채 방바닥에 메다꽂혀

있었다. 그것의 원(元)소유주였던 아버지는 물론 그것을 외아들의 손

에 들려준 조부(祖父) 역시 고인이 되어버린 마당에 이제 그 한많은

물건은 졸업과 함께 허접쓰레기로 전락할 것이었다. 민홍은 아버지의

여한(餘恨)이 손때로 들러붙어 있는 부친의 유품을 신경질적으로 치

켜 들다가 멈칫했다. 가방의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채 방바닥에 널브

러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녀와 백씨 집안의 절연(絶緣)을 보여주

듯 그렇게 두 동강이 난 채. 민홍은 한달 전 조부의 부음에 접했던

충격이 되살아나면서 분노가 치미는지라 어금니를 물었다. 고혈압으

로 쓰러졌다는 조부의 부고를 지면(紙面)에서 발견했던 날 민홍은 불

시에 날아든 누군가의 돌팔매질에 뒤통수를 맞은 듯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조부의 사망은 조금씩 관계를 다지던 혈육을 잃은 데 대한

상실감을 훨씬 웃도는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조부의 죽음이 민홍 모

녀와 백씨 집안의 혈연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최후의 선언처럼 느껴졌

던 것이다.

그랬다. 부고를 접한 직후 그녀가 어금니를 문 채 검은 상복과 쉬폰

머플러로 얼굴을 반쯤 가린 다음 아침 일찍 망인(亡人)의 빈소를 찾

았던 데에는 缺?? 있었다. 그들의 절단된 혈족관계를 눈으로 확인

하기 위함이요, 고인에게 마지막 도리를 다했음을 자신과 고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그 이유였다.

민홍은 거꾸로 메다꽂힌 가방을 집어 들다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

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낡아서 흐느적거리는 가방을 집어

든 즉시 그녀는 마루끝에 있는 광앞으로 다가 갔다. 광 속 깊이 던져

넣을 셈으로 그녀가 가방을 한껏 치켜 올렸을 바로 그 찰나였다. 민

홍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은.“민홍아-.” 쇠잔한

노인의 음성이 조부의 것임을 직감하자 민홍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

다. 고인의 혼령이 등 뒤에 서 있는 듯한 무섬증에 그녀는 얼어 붙은

듯 멈춰 섰다. 공포를 이길 양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뒤돌아 보았을

때 일출 직전의 칼바람만이 마당을 치달려와서 등을 후려 쳤을 뿐 마

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패륜(悖倫)의 죄를 범한 가책에 내어쫓기듯

그녀는 단숨에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숙명의 족쇄처럼 가방이 손에

그대로 들려 있음을 미처 감지하지도 못한 채.

“민홍아!”고인이 새삼스레 손녀 이름을 불렀던 것은 그녀가 명문대

학의 인문계 수석으로 沌槿?직후였다. 그것은 세번째의 상면이었

다. 생후 처음 그들이 만난 것은 그녀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러나 난생 처음 할아버지와 상면했을 때부터 민홍이 어떤 아픔을

맛보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편견이라는 무형의 폭력의 후유증을 경험

해왔음에 분명했다. 조부가 첫 대면하는 손녀에게 주었던 말은 네마

디였으니까. ‘네가 민홍이냐. 애비 이름을 아느냐. 공부 열심히 하

느냐.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바빠서 너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얘

기가 그것이었다. 그리고는 뒤이어 나타난 젊은 비서가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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