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우리 국민의 가계소비지출 변동성이 커지면서 거시경제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시기에 외환위기를 경험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의 98∼2004년 가계소비지출 변동성이 각각 1.6, 1.9, 0.3, 2.6인데 비해 한국의 가계소비지출 변동성은 3.9였다. 가계소비지출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가계지출이 경기가 좋을 때 더 많이 증가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더 많이 감소한다는 의미이다.

실제 한국은 99∼2002년 가계소비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더 크게 상승한 반면 2003∼2004년 GDP 성장률이 둔화될 때는 유일하게 가계소비가 감소했다. 이전에는 소득이 증가할 때 소비가 이보다 적게 늘고, 소득이 감소할 때 소비가 적게 줄어들어 경기의 진폭을 줄였지만, 지금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성향이 소비에도 나타나면서 거시경제 불안을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있어서 쓰고, 없으면 줄인다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소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나라경제에 있어 중요하다. 잠재적 생산능력이 100인데 국민의 소비가 120이라면 물가가 상승하고 과소비의 악순환이 나타난다. 반대로 잠재적 생산능력이 100인데 이보다도 적은 80이 소비된다면 경기침체를 유발하게 된다. 때문에 있을 때 왕창 써버리고, 없으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급격한 소비패턴의 변화는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절약은 미덕이고 소비는 악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경우에 따라 소비가 미덕일 때도 있다. 경기침체 때 소비가 빠르게 위축되면 생산위축, 고용감소, 가계소득 하락, 소비수준 하락, 생산수준 감소, 고용감소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극단적인 절약이 가져오는 역설인 것이다.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 부문에서 고소득층의 소비는 경기를 부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차원에서는 저축은 항상 미덕이다. 씀씀이가 큰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으므로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소비를 하지 않고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므로 우리에게는 현명한 소비가 요구된다. 소득의 증감에 민감한 소비는 개인의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경제에도 이롭지 않다. 냄비식 가계소비! 이제부터라도 바꿔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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