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체험기 (2)

나는 결국 공동육아어린이집의 조합원이 되기를 포기했다. 우리 아이는 집 가까운 곳의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나를 시작으로 설립 멤버들이 거의 다 그곳을 빠져 나왔다. 우리가 원했던 어린이집은 우리가 직접 설립했지만 그곳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어린이집의 완벽함이 부모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완벽성의 일부를 포기하고서라도 아이를 빼놓은 나만의 시간과 여유를 찾고 싶었다.

게다가 공동육아 형식이 아니었어도 과거 어린이집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곳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노는 일을 좋아했다. 비오면 우산을 받쳐들고 옥상에 올라가거나 근처 학교 운동장에 나가 비가 떨어지는 걸 구경했고, 해가 나면 인근 야산으로 데리고 나가 오후가 될 때까지 지치도록 놀게 해줬다. 우리는 그런 어린이집에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무엇을 하겠다고 밝히기만 하면 감탄해마지 않으면서 적극 지지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들과 절대 신뢰 관계에 있었던 우리들은 왜 공동육아조합이 어린이집의 운영과 활동계획에 학부모를 주체로 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육아조합이라고, 조합원이 운영의 주체가 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기본 전제도 모르고 어린이집을 만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전제를 떠난다면 내가 본 그 방식은 참교육이라는 깃발 아래의 치맛바람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요일 휴무도 안 되는 박봉의 직장인들에게는 여전히 머나먼 나라 얘기인 당신들만의 육아천국이었다.

상가 2층에 있었던 예전의 좁은 어린이집보다 널찍한 마당을 가진 공동육아어린이집이 더 춥게 느껴졌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럴 줄 알았다면, 아이가 클 때까지 탁아비용을 좀 많이 내면서 그냥 버틸 걸 공연히 헛고생했다는 쓰디쓴 억울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그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이를 위해 부모의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는 것에 반대한다. 아이를 훌륭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를 위한 서비스도 절박한 문제다. 엄마가 자신의 정신적 휴식을 위해 여유시간을 만드는 일은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어야 할 아주 중요한 교육이다.

부모와 아이 그리고 탁아기관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회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조건이 지금 당장 이루어질 수 없다면 아이도 그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모와 교사가 분골쇄신함으로써 아이의 천국을 만들어주려는 생각은 어른들에게 불공평하기 짝이 없어서 비교육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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