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집 체험기

일하는 엄마들의 꿈은 무엇보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시설을 만나는 것이다. 엄마보다 더 노련하고 여유 있게 아이를 돌보면서 요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이나 EQ교육이 가능한 곳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 참교육의 열망을 안은 부모들이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냈던 지대한 관심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드는 일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원래 우리 아이들을 맡겼던 어린이집이 경제적인 위기에 몰려 문을 닫게 되자 일종의 강구책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그곳 선생님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더없는 사랑으로 키워준 선생님들에게 장기적으로 안정된 어린이집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여남은 명의 학부모가 없는 시간을 쪼개 회의를 하고, 집을 구하러 다니고, 은행 대출을 받아내고, 조합원을 모으면서 결국 기적을 만들어냈다.(당시 우리 심정은 거의 그랬다)

좀 외진 곳이긴 했지만 수개월 만에 우리 지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세워졌고, 많은 수의 새로운 식구가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는 곧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가지고 있는 원칙과 정신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곳은 부모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학부모가 어린이집의 운영과 재정을 계획, 관리해야 했고, 시설 보수, 청소, 대소사뿐 아니라 육아 도우미 등을 떠맡아야 했으며, 불참할 경우 이유 불문하고 적지 않은 벌금이 부과되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준비하면서 쌓였던 피로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모임을 가져야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점은 그동안 운행되던 차량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차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출근 전에 오래 걷거나 마을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부모일수록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함께 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훌륭한 생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원칙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새 조합원 부모들의 강 같은 의지 앞에 나는 그만 두 손 들고 말았다. 어린이집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단순 무식하게 조합을 설립한 우리에 비하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기다렸던 신입 부모들이야말로 공동육아정신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었다. 논리적으로 하자면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뭐야? 이곳마저도 우리 일하는 여자들의 의지처가 아니었단 말이야? 이곳도 아이의 행복을 위해 부모더러 분골쇄신하라는 거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뱃속에서부터 치밀어올랐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