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퓨전사극 TV드라마 ‘궁’

여성 만화가 박소희(29)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MBC 수목드라마 ‘궁’이 화제다. 11일 첫 방송에서 16.2%의 시청률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엔 1주일 만에 3만여 건의 게시물이 올라와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대변했다.
‘궁’은 대한민국에 입헌군주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가정 아래 황태자 이신(주지훈)과 갑작스럽게 정략결혼을 하게 된 평범한 여고생 신채경(윤은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꽃미남 왕자와의 사랑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바탕이 되고 있지만 독특한 설정과 궁 내의 권력 암투를 그린 음모론, 청소년의 성장 드라마적 개성이 가미됐다.
무엇보다도 ‘궁’이 기존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른 점은 신데렐라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왕자와의 사랑의 줄다리기를 보여주고 ‘마침내 성공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결말을 맺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황태자와 여고생의 결혼식이 이뤄진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신데렐라 판타지가 아니라 10대 여고생이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궁에 들어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전통과 현대, 남성과 여성, 서민 가정과 황실 가정,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충돌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개 과정에 따라 10대들의 성 이야기도 솔직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주인공 신채경의 캐릭터는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대변한다. 황후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대략난감’ ‘열공’ 등 채팅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그의 발랄함은 계급구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세대 여성을 상징한다. 황태자인 남편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할 말은 하고야마는,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발차기나 물기도 서슴지 않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신채경은 10대 여성의 발랄한 시선으로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가부장제 문화를 바라보고 남성 중심적인 궁중 질서의 변화를 모색하는 긍정적인 캐릭터”라며 “‘궁’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며 30∼40대 시청자가 주도하는 기존 드라마 시장에서 10대를 위한 새로운 퓨전 사극의 가능성을 연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특한 설정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문화의 표현이나 여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주인공이 정략결혼을 승낙하는 계기가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는 ‘효녀 심청’적인 결정이나 궁 내에서 남성들은 양복을 입고 있는 데 비해 황후 등 황녀들은 가채에 전통 궁중 한복을 고수하고 있는 점은 남녀 차별적인 의식을 보여준다. 채팅 언어의 과도한 사용도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모니터연구부장은 “입헌군주제라는 새로운 설정과 내용,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이 아닌 당당한 신세대 여성 캐릭터는 긍정적”이지만 “돈 때문에 남성에게 이끌려가다 사랑을 느낀다는 내용은 기존 드라마 여성 캐릭터의 답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분방한 평민 여성이 가부장적인 궁중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 지 미지수”라면서 “현대적인 태자 비상을 어떻게 창조해 가느냐가 드라마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마의 원작이 된 만화 ‘궁’은 문화관광부 주최 ‘대한민국 만화대상’에서 3년 연속 인기상을 차지했고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도 60만 부 가까이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드라마 단골 소재 ‘전통 vs 현대’
‘쾌걸 춘향’ 등 큰 인기 모아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추구한 드라마가 하나의 트렌드로 선보이며 인기를 끈 것은 ‘궁’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신세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전통적인 가치를 신세대 언어 속에 담아내 청소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05년 방송됐던 KBS 드라마 ‘쾌걸 춘향’은 고전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남원 경찰서장 아들인 이몽룡(재희)과 밤무대 가수의 딸 성춘향(한채영)이 계약결혼을 한다는 설정을 그렸다. 10대들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고 고전 속 열녀 성춘향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현대적인 여성으로 재창조했다.

2004년 방송된 KBS 드라마 ‘낭랑18세’는 가부장적인 집안의 종손인 검사 권혁준(이동건)과 정략결혼 하게 되는 여고생 윤정숙(한지혜)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옛것을 지키려는 할아버지 세대끼리의 정략결혼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신분과 나이 차이, 그리고 종갓집 며느리라는 굴레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두 사람과 주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았다. ‘정혼’이나 ‘종가’ 등 남성 중심 전통의 가족 개념을 만화같이 과장된 캐릭터로 버무려 희화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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