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새해의 화두로 중산층이 등장하고 있다. 중산층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는 소득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다. 국가 간 비교에 쓰이는 중산층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중위소득(median income)의 50%와 150% 사이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중위소득이란 일반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정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을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자료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97년에 중산층 비율이 68.5%였지만 2004년에는 63.9%로 4.6%포인트 줄었다고 한다. 이를 전체 인구 4800만 명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180만 명 정도의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가정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때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가정주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부들이 실직한 가장을 대신해서 졸지에 집안 경제를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에 중산층 약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한파와 신용불량자의 급증으로 중산층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러한 중산층의 몰락이 IMF를 조기에 극복했다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참여정부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최근 브리핑 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중산층 몰락론은 “근거 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왜곡하는 정치적 편파성까지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주장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중산층이었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94년 70%에서 지난해 말에는 56%로 떨어졌다.

중산층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데도 민생을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은 새해 벽두부터 개각 논쟁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대통령은 차세대 지도자 육성을 명분으로 집권당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한 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라고 반박하면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혜를 모아도 부족한 때 정부·여당은 한가롭게 코드 개각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여당에 대해 국민은 참담하다 못해 측은감마저 든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야당은 또한 어떠한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사학법 개정 무효화를 국가 정체성과 이념논쟁으로 결부시키면서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사학법 개정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한나라당의 기대와는 달리 찬성 여론이 훨씬 높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정도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을 가르치려고 하는 ‘계도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00년 9월 부총재로서 이회창 총재가 주도했던 장외투쟁에 대해 민생이 어려울 때는 어떤 경우에도 장외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대구집회에 불참한 적이 있다.

지금 박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민생 우선의 정신’이다. 여야 모두 국민을 진정으로 두려워한다면 이제라도 민심을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버리는 ‘마이동풍식 정치’를 접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이럴 때만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중산층을 다시 반듯하게 세울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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