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중앙·지방의회 여성 늘어야 ‘차별’해결

주영진(48) 국회 여성가족위 수석전문위원은 ‘마당발’로 통한다. 81년 입법고시로 국회 사무처에 첫발을 내디딘 지 올해로 25년째. 건설위, 교통위, 예산결산위 등 다양한 상임위뿐 아니라 국회 내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기획예산담당관, 의사국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8월 국회 여성가족위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으로 자리를 옮긴 뒤부터 여성 관련 예산을 늘리고 이슈를 법제화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주 수석은 최근 개소한 탈성매매 여성 지원센터인 여성중앙인권센터의 예산책정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국회의 운영 과정을 지켜본 주 수석은 이르면 18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부의장이 탄생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17대 국회가 기존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여성 의원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국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청와대에서 모두 결정하고 국회는 절차만 갖추기도 했었다. 그에 비하면 국회 역시 많이 민주화됐다. 상임위원장뿐 아니라 국회의장도 경선으로 뽑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한다. 과거에는 당 지도부에서 결정하던 사안을 지금은 각 당에서 의원총회를 통해 결정한다.”
-지난 2년간 여성 의원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성 의원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깨끗한 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정감사, 입법활동 등 의정활동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때론 자기 의견과 소신이 강해 타협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남성 의원들은 목표를 위해 물러서기도 하고 타협도 하는데, 일부 여성 의원들은 이런 부분들이 좀 부족하다.”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은 언제쯤 탄생하리라고 보나.
“현재 김원기 국회의장은 6선 의원이다. 국회의장이 되려면 선수가 중요한 조건이다. 정치인은 경험이 중요한 직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국회의장이 탄생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18대나 19대 국회에선 여성 국회부의장 탄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전망한다.”
-국회의원 정수가 더 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외국은 주로 양원제이므로 상하 양원의 의원 수를 합치면 단원제인 우리보다 의원 수가 많다. 전문성 보강 및 여성 의원의 진출 확대를 위해 지역구 의원 수는 동결하되 비례대표 의원 수는 다소 늘어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여성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호주제폐지 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여성운동이 그 이후의 어젠다를 설정하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호주제 폐지는 국회에서도 올 한 해 10대 뉴스에 선정되는 등 대단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차별을 시정하고 없애는 방향으로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 여성계가 50년간 원외에서 노력해온 것을 알고 있다. 밖에서만 외치는 것보다 직접 원내로 진입해 잘못된 법을 고치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의회에도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면 차별적 요소 시정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60%에 비해 낮다. 국민소득 2만 달러 돌파는 여성들의 경제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회 사무처에서 일하는 입법고시 후배 중에 여성은 어느 정도 있나.
“10년 전부터 입법고등고시에 합격해 국회에 들어온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수재들이다. 이들 중에는 서기관 직급이 가장 높은데, 간부급 중 30명 정도가 여성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이 뛰어나다. 향후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빈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 배려, 비혼모, 한 부모 가정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해결 등에 국회의원들이 힘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과거엔 지도자의 자질이 중요했다. 요즘은 자질은 있는데 지도자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하의 가슴속에 리더가 있다는 말이 있다. 리더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다. 리더는 남이 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후배 직원이 능력 발휘를 잘하게끔 주위 여건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십자가 없이 영광 없다’(No Cross, No Crown)는 말이 있다. 힘들여 노력해야 당당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앞선 분야를 개척하는 여성들은 자기로 인해 많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주영진 수석전문위원은?

81년 중앙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입법고시 5회로 국회 사무처에 입사했다. 건설위, 국제협력, 기획예산담당관, 교통위, 예산결산위원회 등에서 근무했으며 의안과장, 의사국장, 예결위 전문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기획관리관 등 국회 사무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석 전문위원은 정부 부처가 법안, 예산안, 결산안 등을 국회에 제출하면 검토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을 한다. 또한 상임위원회에서 주최하는 각종 회의에 대한 보좌를 한다. 수석 위원의 검토 의견은 향후 시금석 역할을 한다. 국회의원들이 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 전문 위원의 의견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취재 뒷얘기

주영진 수석은 인터뷰 도중 ‘비례대표 30%를 여성 할당’으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던 2000년 당시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때 주 수석은 의사국장으로 일했었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 30%을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남성 의원들은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자투표가 아니라 기립투표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렇게 되면 법안에 누가 찬성을 했는지 반대를 했는지 기록으로 남지 않고 찬성, 반대 숫자만 남는다. 여성 의원들이 전자투표를 하자고 주장했다.”
주 수석은 “만약 전자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비례대표 여성 할당 30%를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은 반여성적 의원이란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여론의 눈치를 봐서라도 찬성을 찍은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 뒤 16대 국회에 여성 의원 수가 그전보다 2배 이상 늘었으며 16대 국회 말에는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으로 바뀜에 따라 여성 의원 수는 더 늘었다.
주 수석은 “여성 의원이 전체의 30% 정도 비율을 차지할 때까지 할당제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