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생존자 말하기 대회

“가해자가 군인이어서 병원 입원 도중, 헌병대에 가서 6시간 동안 마라톤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관 첫 마디가 “당신이 처녀입니까, 아닙니까”였어요. 또 “당시 상황을 묘사해 보라”고 요구했을 때 말할 수 없는 분노감을 느꼈지만 내 억울함을 안 들어줄까 봐 항의하지도 못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이미경)가 11월 26일 서울 대학로 쇳대박물관에서 개최한 ‘제3회 생존자 말하기 대회’의 첫 번째 참가자 K씨가 ‘이야기’한 내용이다. 18세 때 성폭행 피해를 입고 만 3년 만인 올해 1월 검찰의 무혐의 판결을 뒤집고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낸 K씨는 “‘성폭력엔 피해자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수사기관의 그릇된 수사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세 번째로 마련된 이번 생존자 말하기 대회엔 180여 명이 모여 생존자들의 말하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이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25년 전 사촌오빠로부터의 성폭행 피해를 풀어낸 C씨는 “내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여기며 살아왔다”며 “이젠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씨가 “내가 잘못한 게 아니란 말을 듣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자 곳곳에서 “가해자가 나쁜 X이에요” “언니는 잘못한 게 없어요”라는 대답들이 들렸다. 이에 최씨는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제, 알아”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가장 힘이 되어 주는 것이 가족의 지지다. 그러나 때때로 ‘잊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가족의 반응이 생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J씨는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글의 형식을 통해 ‘성추행 경험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했을 때 어머니한테 지지 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머니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는 “엄마가 여자로서 참고 살아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며 “엄마가 나를 믿고 사랑해준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이미경 소장은 “12월 8∼10일 말하기 대회 1·2·3회 참가자 30∼40명 정도가 강원도로 캠프를 떠날 계획”이라며 “대회 참가자들의 치유를 위해 꾸준히 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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