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주과학자 조슬린 벨 버넬

젊은 박사학위생 시절 천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펄사’를 최초로 발견한 조슬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 62). 이 발견으로 인해 그는 73년 지도교수 휴이시와 함께 권위 있는 미켈슨상을 수상했지만 이듬해 노벨상 수상에서는 제외됐다.
이 사건으로 온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프레데릭 호일경, 토머스 골드 등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조슬린 벨이 당연히 노벨상을 공동 수상해야만 했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아일랜드 사투리가 남아있는 말로 겸손하게 “펄사의 발견은 운이 좋았던 것뿐이며,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이 노벨상을 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기에 노벨상 수상론은 좀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슬린 벨은 1943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저는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했어요”라고 말한 그는 열한 살 상급학교 진학시험에 떨어졌다. 부모는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찾아주기 위해 그를 영국 기숙학교에 유학 보냈다. 그곳에는 훌륭한 물리선생님이 있었다. 라디오 퀴즈 ‘영국의 두뇌’ 프로그램에서 결승까지 진출했던 건축가 아버지의 딸답게 그는 과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게다가 그는 여성교육을 강조하는 퀘이커 교도였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여름 내내 다른 몇 명의 학생들과 망치를 휘두르며 장장 120마일에 걸쳐 전선과 케이블을 설치해 전파 망원경을 만들고는 퀘이사를 관찰했다. 그러던 중 한 신호를 포착했다. 처음에는 외계인이 보낸 것이라 생각했지만 에너지의 펄스임이 밝혀졌고 그 원천은 중성자별임을 알게 됐다. 질량은 태양과 같지만 태양의 지름이 86만5000마일임에 반해 중성자별의 지름은 6마일밖에 안 되는 초과밀별이었기에 지구의 수조 배에 달하는 자장을 가진 중성자별이 전파를 생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68년 그가 펄사를 발견했을 때 언론들이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고, 한 언론인은 이렇게 서두를 열었다. “이곳은 4.5에이커에 달하는 기둥과 전선으로 이뤄진 거대한 안테나 숲입니다. 몇 달 전에 이 안테나는 우주에서 ‘작은 녹색인(Little Green Man)’이 보낸 특별한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이곳 현장에는 대학원생이며 천문학자인 조슬린 벨이 나와 있습니다. 이 안테나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면서요.”
노벨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는 많은 명예를 얻었다. 늘 직장을 전전하는 정부 공무원이던 남편의 직업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고도 18년간이나 임시직이나 시간제일밖에 하지 못한 그의 형편을 고려하면 그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오펜하이머상, 프랭클린재단의 미켈슨 메달을 받았으며, 미국천문학회가 탁월한 여성 천문학자였던 비애트리스 틴슬리를 기리는 상(Beatrice M. Tinsley Prize)을 받았다. 그밖에 수많은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여왕에게 기사작위인 COBE를 수여 받았으며, 왕립학회 종신회원이기도 하다.
대중의 물리학과 천문학 이해를 위해 조슬린 벨은 91년부터 개방대학에서 성인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방대학은 전통적인 학제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곳으로, 15만 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시간제가 아닌 정식 교수가 됐다.
시험의 실패에 굴하지 않은 어린 시절, 실패한 자신을 믿고 위대한 발견을 한 청년 시절을 거치면서 “자신을 믿는 자에게는 꿈이 이뤄진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줬다. “과학계 선배로서 내 존재가 더 많은 여성이 과학계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여성 과학자 지원 프로젝트인 아테나 자문위원회 위원, 로잘린드 프랭클린 수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오늘도 여성 과학자의 대변인·역할모델·멘토·여성과학 진흥인 역을 하는 틈틈이 퀘이커 종교친우회 일을 보고 또 스코틀랜드 컨트리댄스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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