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법제도, 국민고충 없게 미리 찾아 예방해야죠”

발족 10여 년 만에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위상이 격상되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11월 2일 새 출발을 알리는 출범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그 한가운데 서있는 송철호(56) 위원장이야말로 국민고충처리위의 제2기를 가장 감격스럽게 맞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며 동시에 위원회에 잘 맞는 ‘새 옷’을 갈아입힐 총책임자다.
“부산엔 노무현, 울산엔 송철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표적 지역 노동인권 변호사 이력의 송 위원장은 그 때문에 지난 4월 임명 당시 일부에서 코드인사란 신랄한 비판도 있었지만, 그 자신은 노 대통령과 국가운영 철학을 같이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철학은 국민 참여이고,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민원과 국민 제언을 통합관리해 행정기관의 제도 개선을 꾀하는 곳이기에” 참여정부의 이상을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중심축이라는 것이다.
9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시장에 도전해 석패했고, 울산에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기에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도 돌지만 정작 그는 “현재 직분을 더 하고 싶다”며 “가능하면 적절하고 좋은 후보들이 많이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지인들과 언론까지 합세해 출마하라고) 많이 괴롭힌다”는 여운을 남기며.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발족 10여 년 만에 제2의 도약기를 맞은 것 같다. 소감과 각오를 말해달라.
“정말 그렇다. 이젠 민원 해결을 넘어 제도 개선을 통한 민원 예방 기능까지 더해 ‘사회적 질환의 치료소’ 역할을 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들어 두드러진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 전엔 위원회가 비상임 위상밖에 못 가졌는데, 지난 6월 일명 ‘국민고충처리법’이 국회를 통과, 11월 말 시행됨으로써 절반은 민원 해결의 역할을, 나머지 절반은 제도 개선의 역할을 하게 됐다. 국민과 정부의 접점에서 하나의 광장 역할을 하면서 국민에게도 행정기관에도 열려 있는 기관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달라진 점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가. 
“한마디로 국민고충 해결의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가령, 행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민원이 들어오면, 이를 직권조사하고 해당 공무원이 그 조사를 회피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이행이 안 될 경우 감사를 의뢰할 수 있으며 관보 등에 해당기관 혹은 공무원의 행태를 게재할 수 있다. 거기에다 방문에 서면질의까지 날아갈 것이니 위원회의 시정 권고 말을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웃음). 여기에다가 ‘예방’ 차원에서의 기능이 강화돼 어떤 부분에서 국민 고충이 많이 발생하는 지를 미리 조사 연구해 제도 개선을 하고 법령 개정을 권고할 수 있게까지 됐다.”

-이번에 위원회의 체질 변화를 꾀하면서 벤치마킹한 모델이 있다면.
“옴부즈맨 제도가 1809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만큼 북유럽 쪽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옴부즈맨(Ombudsman)’이란 용어는 스웨덴어로 대표자, 대리인, 변호인, 후견인 등을 뜻하는 것으로, 이 제도는 행정기관에 의해 침해받는 각종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3자의 입장에서 신속, 공정하게 조사 처리해주는 국민권리 구제제도다.”

-부인이 간호학과 교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맞벌이 부부로 서로 일과 가정을 병행해나가려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솔직히 전통적 남성관이 내게도 좀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출장 다녀오신 아버지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보고 자란 ‘낀 세대’ 아닌가. 그러나 여성이 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소중한 일이라 생각해 아내가 일하는 데 보탬이 되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했다. 아내와 학문적 토론도 종종 벌이곤 했다.”

-장성한 2남2녀를 두신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딸들에겐 어떤 조언을 하는가.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회의를 하곤 했는데, 오히려 딸들에게 ‘여성 대통령 시대가 머지않았다’며 정치하라고 권하곤 했다. 반장이나 학생회장 등을 통해 미리 경험도 쌓으라고 했다. 전문인으로서 정치인이 존경받을 시대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님들의 진로가 궁금해진다.
“내 세대는 형제가 법조인이었는데(김대중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송정호씨가 형이다) 아이들 세대는 두 아들은 나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데 반해 딸들은 둘 다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준비 중이다. 둘째 딸이 수시합격한 2002년 당시 대선이 한창이었는데, 대학 입학 전 민주노동당 대선 캠프에 가서 자원봉사하라고 했다. 법조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균형감각이라고 확신해서다. 민주노동당은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므로 중산층 부모 밑에서 어렵지 않게 살아온 딸이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주로 노동운동계에서 많이 활동하셔서 그런지 여성문제나 여성단체와는 별 관련이 없으신 것 같다.
“사실 지난번 대법원에서 여성 종중원 인정 판례가 났을 때 ‘내가 7, 8년 앞당길 수 있었을 텐데…’란 아쉬움이 스쳤다. 울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할 때 한 여성이 그 문제 때문에 상담하러 왔었다. 당시 무료 변론을 자처하며 내 손으로 그릇된 관행을 고쳐보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분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종중의 무언의 압력이 부담스러웠었나보다. 또 90년대 후반 울산에서도 여성노조가 생기려 할 때 내 사무실을 싸게 넘겨달라고 해서 사무실도 넘겨줬다. 지역 여성의전화와 가정법률상담소 지도위원과 고문변호사로 활동했고,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제정 당시 순회강연을 하며 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내 이력에 여성단체 지원 경력 좀 넣어야겠다(웃음).”

-여성들도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활발히 준비하고 있다. 여성 후보들에 대해 어떤 전망을 하는가.
“근본적으론 지금과 같은 지역 분할 구도에선 여성이 정치력을 키우기가 매우 힘들다. 지역구도를 극복하면서 선거제도와 문화를 개선해나가는 바탕에서 여성이 소신껏 정치에 참여할 때 여성정치 발전이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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