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로운 어린이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작년에도 어린이책 시장은 종수에서 9.7%, 발행 부수도 19.3% 신장

세를 나타냈다. 1년에 4천권 이상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 책에서 양

서를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드는

일이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므로, 부모

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권장도서목록에 의존하게 된다.

도서관이나 서점, 글짓기 학원에서 접할 수 있는 단행본 형식의 권

장도서목록은 대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 책 목록을 출판사별로 묶은 책자가 있다. 출판사의 특성을

알 수 있지만, 양서와 악서에 대한 최소한의 구분도 발견할 수 없다.

양서를 찾는 이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국의 어린이 서점이 권하는 어린이 책 목록이 있다. 어린이 책 전

문 유통회사가 그들이 책을 보급하는 전국의 어린이 서점의 반응을

참고해 만든 책이다. 연령별 권장 도서 목록과 간단한 설명을 실었

다.

어린이 책을 연구하는 시민단체가 만든 권장도서목록집이 나와 있

다. 양서의 선정 기준을 마련해 놓고, 회원들의 토론과 평가에 따라

연령별로 권장도서목록을 정한다. 신문이나 일간지에서 이러한 단체

들의 권장도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책을 일괄 구매해야 할 때, 권장도서목록을 참고하면 일단 악서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치원이나 학교 도서관은, 독자의 연

령 폭이 넓고 다양한 독서능력을 가진 다수의 아동집단을 대상으로

하므로, 권장도서목록을 참고해서 책을 구매하면 편리하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권장도서목록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목록 자체가 지니는 한계와 사용자들의 그릇된 사용법으로 구

분하여 살펴보겠다.

권장도서목록에는 독서 주체인 아이들의 반응보다 반드시 읽히겠다

는 어른들의 의지가 우선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책 선정 기준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난이도 측정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데

있다. 충분한 시기를 두고 아이들의 반응을 검토하는 노력이 무엇보

다 중요하다.

어느 단체는 그림책을 선정할 때, 회원 한 명이 그림책을 아이처럼

소리내 읽고 다른 회원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평가한다고

들었다. 어른들도 저마다 유년기의 경험이 다르다. 또한 우리들이 30

년 전으로 돌아가 본 동심의 세계와 1998년 현재 자라고 있는 아이

들의 세계가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책을 평가하면, 어른들은

좋아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시큰둥한 다수의 책들이 선정된다.

선정과정과 선정자에 대한 정보가 일반인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

았다. 전문가도 자신 이 좋아하는 유형의 책에 눈길이 더 가기 마련

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고른 책은

일치하지 않는다. 목록 작성에 참가한 사람들과 선정과정을 독자에

게 자세히 밝혀야 목록이 지닌 한계를 감안하고 책을 고를 수 있다.

해마다 목록의 구성이 같다는 점도 한계다. 연령별, 주제별 권장도

서목록 외에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책을

주제별로 모은 후, 동일 주제 안에서 난이도가 낮은 책부터 높은 책

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부모들이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된다.

권장도서목록을 언급하기조차 싫을 때가 많다. 많은 부모들이 연령

별 권장도서목록을 단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

이다. 거기에서 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다. 그 폐단은

권장도서 목록이 갖는 장점을 압도할 지경이다.

우선 부모들은 연령별 권장도서목록에서 개인차는 무시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부모들이 자녀의 독서 수준과 기호를 고려하지

않고 목록에 나온 연령 구분에 따라 책을 골라 낭패를 보는 예를 수

없이 봤다.

둘째, 권장도서목록에는 연령별로 수십 권의 책들이 소개되기 때문

에 그것만 읽혀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배부른

농부의 밭에 잡초가 무성하듯, 떠먹여주는 밥에 길들기 마련이다. 목

록에만 의지하다보면 부모들, 심지어 비평가의 역할을 해야할 독서

지도사조차도 목록에서 누락된 ‘정말로 좋은 책들’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

셋째, 책머리에 “그 학년부터 그 이상 학년까지 읽을 수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권장도서목록에서 자녀의 연령 이하

에 적힌 책들을 결코 읽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부모의 자녀들

또한 그런 책을 읽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상담을 하다보면, 권장도

서목록에서 제 나이 이하의 책들을 즐겨 읽는 아동을 독서지진아로

취급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또, 자녀들이 제 학년보다 높은 학

년에 선정된 책을 읽기 바란다.

권장도서목록을 대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참고는 하되 맹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부모들이 읽어보고 자녀의 특성

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한다. 차라리 제 나이보다 더 낮은 연령의 권

장도서를 읽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책에 대한 부담감을 줄인다.

아이들의 긴 인생을 떠올릴 때, 그 아이가 책을 한 두 해 일찍 읽고

늦게 읽는 것은 정말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여러모로 한계를 지닌

권장도서목록을 기준 삼아 아이를 판단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은 낭비

다. 부모들이 조바심 내지 말고 길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 독서

상담자로서의 절실한 바램이다.

김은하/ 1961년 서울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사회학과 졸

업. 공동육아 연구원 전문위원.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가정 독서지

도’ 강의 및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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