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주택프로젝트 위해 떠난 건축가 조인숙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겨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가야산 해인사) 중

‘다리건축’의 조인숙(51) 대표 건축사는 그의 집 현관에 걸린 문구의 한 구절을 실천하며 사는 듯하다. 30여 년을 건축 현장에서 뒹굴었지만, 돈이 굴러 들어오는 현대적인 대형 프로젝트보다는 공들여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문화 보존 사업에 더욱 더 마음을 기울인다. 그뿐인가. “기술을 보시하는 마음으로” 건축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최소한의 실비만 받고 어디든지 달려가고 싶어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 세상에선) 어디든 갈 만하기에, 늘 떠날 준비가 돼있고, “하도 떠돌아 다녀 사무실이 영원히 자리 안 잡힐 것 같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할 정도다. 그렇기에 9월부터 2월까지 5개월간 진행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전문가 파견사업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시 주택 프로젝트의 건축 감리에 자문관을 맡아 훌쩍 아프리카로 떠나는 것 역시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음날 새벽에 떠나면서도 아직 짐도 꾸리지 못한 그를 붙잡았다. 그 한계적인 시간 안에 건축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건축물이 하나의 물질이 아닌 생명체가 되기 위해, 또 역사와 현재가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 건축가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기술을 ‘보시’하는 마음으로
아프리카 주택사업 도울 것

“이제까지 한옥을 보수하거나 절간을 짓거나, 어쨌든 옛것을 보존하는 일을 해왔다. 한국이 못 살다가 급속한 근대화 바람으로 잘 살게 되면서 미국 일변도로 개발돼 우리 고유문화가 깔아뭉개진 것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아프리카 유일의 독립국으로 유구한 역사에 문화유산도 많은 나라다. 이런 에티오피아를 한국의 실패 경험을 거울삼아 보존에 주의를 기울이며 개발하도록 자문할 생각이다.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환경과 정신, 문화를 보존하면서 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곳 시청과 협의해 구체적 계획과 스케줄이 잡히겠지만, 인구의 50%이상이 굶어죽는 최빈국이기에 아무래도 무주택자를 위한 저가의 주택 공급이 주요 현안이 될 것 같다.

 현장선 드문 ‘30년이력’ 건축가
“눈 뜨면 일이지만 재미있어요”

막 오십을 넘어선 조 대표는 또래 건축가 중 드물게 아직까지 현장을 뛰는 사람이다. “눈 뜨면 일이지만 일이 재미있어” 마흔 중반 은퇴 계획을 육십으로 미뤘다. 대학(한양대 건축학과)을 졸업하자마자 77년 가을부터 직장을 잡은 셈이니 이력이 30여 년에 달한다. 86년 현재의 건축사 사무소 ‘다리 건축’ 문을 열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독립이라기보다는 나를 스스로 고용해” 고용 창출을 이뤘다.
‘다리’란 이름 자체도 의미심장하다. 이곳 저곳을 누비는 사람의 튼튼한 ‘다리’란 의미에 더해 물리적뿐만이 아니라 추상적으로도 문화와 장르를 연결해주는 구실을 하는 ‘다리’라는 의미가 겹쳐진다. 그 이름에 걸맞게 그는 현대와 전통을, 건축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을 자청하곤 한다.
서울 종로의 토박이로 아직도 시내 한가운데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는 이미 90년대 초반 건축문화 강좌와 답사로 시내 마을들을 둘러봄으로써 유적지 답사가 아닌 생활 주변 역사와 문화를 찾는 운동을 건축계 처음으로 시도했다.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전통 건축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어서 서울 주재 외국부인회 소모임 ‘드레곤 레이디스 클럽’(Dragon Ladies Club)에서 전통 건축 문화를 소개해주고 직접 이들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자청하곤 한다.
전통 삶과 건축의 재현에 대한 관심으로 서재 책상에는 대동여지전도가, 식당 테이블엔 (옛 서울의) 수선전도가 깔려 있다. 단순한 ‘폼’ 용이 아니라 오며 가며 끊임없이 공부하기 위해서다.
서울 유일의 전통 한옥들이 밀집해 있는 북촌을 보존하기 위한 위원회에 실질적인 위원장으로 시간을 쪼개 참여하고 있는 것도 크게 보면 한 맥락이다. 그가 활동하는 ‘북촌보존위원회’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소격동, 계동, 재동 일대 19만5000평에 대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한편으론 보존을, 한편으론 환경 개선을 꾀하는 프로젝트에 자문역을 하고 있다. 이젠 건축사들이 구청 등에서 가끔 무료 상담을 해주거나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에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넘어 비영리 단체 활동에 전문가로 참여함으로써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촌은 엄격히 말하면 조선시대 것도 아니고, 근대적 유산이다. 인공적으로 생겨난 마을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건축이란 바로 그곳에 살 사람들을 위해 짓는 것이다.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집? 멋들어지게 해놓은 만큼 관리비도 많이 들고 살기에 불편해질 것이다.”
그는 뉴욕을 대표하는 세기의 건축물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해서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냉소 섞인 지적을 삼가지 않는다. 달팽이 모양으로 건축물 전체가 말려 올라가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다소 기울이면서 작품을 감상해야 하지 않느냐며.
그의 관심은 단순히 옛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옛 문화 유산에 지금 2000년대 사람의 육신과 정신이 어떻게 결합해 공존하느냐는 것이 궁극적인 관심사 같다.

‘서울 북촌은 귀중한 근대 유산’
 우리 건축문화 알리기도 열심

“우리나라 전통 사찰들은 많이 망가져 있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 있는 선암사 정도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경우일 것이다. 이는 사찰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회가 점점 현대화되면서 사람들의 요구도 이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원래 신도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는 부응해야하지 않겠는가. 사찰의 규모가 점점 대규모로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주위 환경 요인과 사람의 심성이 더해져 사찰의 현재 모습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요구라? 건축가로서는 무시하기도, 외면하기도 힘든 부분이리라. 목조 건축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절들의 전통을 유지, 보수하는 데 무한한 애정과 열정을 쏟는 그도 이 부분에선 머리를 짜낼 수밖에 없다. 그는 지방 소도시 작은 주택가에 시내 포교당을 설계한 경험을 일례로 든다. 땅이 좁아 지하 공간을 활용해야 했는데, 지하를 크게 파고 다리를 만들어 도로에서 대웅전으로 건너가게끔 하여 공간과 시간에 변화를 주는 한편 스님들의 요구대로 불전은 목조로 만들어주고 그 외 부분은 현대적인 기능을 가미했다. 이렇게 되니 실제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 호응이 무척 좋았다는 것.

‘전통’ 보존보다 ‘공존’이 문제
‘어울림’을 보는 안목 길러야

“이제 전통 건축이란 현재에 맞게 기법이나 수법을 계승해 가는 것으로 이해돼야 하지 않을까. 이전 전통 건축 논의에선 대부분 모양새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 아마도 한국의 건축사가 기술의 역사보다는 미술사의 관점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그만큼 쓰임새에 대한 논의가 그리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무엇을 현대화할 수 있을까, 모양새 외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연구 중이다.”
건축가 중 새로운 창작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씨는 그 희귀군에 속한다.
아디스아바바시에 새로 세워질 집들에 그의 이 전통과 현대의 살아 숨쉬는 조화가 어떤 모습으로 반영될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체험이 어떻게 소중히 다루어질지 5개월 후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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