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여성통일연단 4박5일 방북동행취재기

평양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10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고려민항은 불과 1시간만에 남측 여성 인사 100명을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놓았다.
문화 행사 위주로 진행된 2002년 대회의 목적이 남북한간 감정의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면 이번 행사의 목적은 남측 여성들이 직접 평양을 방문해 여성·청소년 관련 시설들을 참관하고 북한 여성들의 삶을 직접 느끼는 데 있었다.
10일 오전 7시30분 부푼 기대를 안고 평양행 비행기에 오를 여성들이 공항에 모습을 나타냈다.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북한 인공기가 새겨진 비행기가 눈앞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항공기에 탑승. 비행기가 이륙한 뒤 40분쯤 지나자 북한의 산하가 시야에 들어왔다. 강렬한 가을 햇살 아래 노랗게 변한 평야가 펼쳐졌다.

고려민항으로 1시간만에 도착

비행장에 도착하자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북측준비위 여성분과위원회 소속 여성들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남측 여성들을 맞았다. 평양에서 체류기간중 주로 머물렀던 양각도국제호텔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조선민주여성동맹청사였다. 조선민주여성동맹은 1945년 북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창립됐으며 31세부터 55세까지 일반 여성이 가입돼 있다. 북측의 유일한 여성조직으로 회원수는 200만명에 달한다.

묘향산에서 초가을 ‘만끽’

방문 이틀째인 11일 오전 평양에서 고속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묘향산을 찾았다. 평안북도 향산군과 구장군, 평안남도 영원군, 자강도 희천시 등에 걸쳐 있는 산인 묘향산의 최고 높이는 1909m. 예로부터 한국 5대 명산의 하나이자 조선8경의 하나로 알려져 왔다. 묘향산에 위치한 보현사는 1024년에 24동 건물로 창건됐다. 서산대사와 임진왜란 당시 승려가 의병에 가담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북측에서 가장 큰 절이고 남측으로 치면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와 해인사, 송광사를 합친 절이라고 한다.
묘향산 입구에는 200여개 국가의 지도자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온 선물을 전시한 국제친선전람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을 형상화한 밀랍 인형이 있는 방에 들어서자 북측 안내원들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경의를 표했다.

남북여성통일연단 행사와 평양산원 방문

12일 오전 11시 남북여성통일연단 행사장이 열린 청년중앙회관 다기능홀에는 5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연단에서 남과 북의 여성들은 “전쟁반대, 평화 수호”를 한마음으로 결의했다. 하지만 남측 여성들과 북측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마련되지 못했다. 남과 북의 여성들은 눈인사만을 나누었을 뿐 행사가 끝난 뒤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오후엔 북한 최대의 여성종합병원인 평양산원을 방문했다.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있는 평양산원은 1980년 준공됐다. 500여개의 침상이 있으며 2030개의 분만실, 입원실, 수술실, 치료실, 유아실, 구급실 등을 갖추고 있다. 1996년 유니세프로부터 ‘모유의 영양을 잘하기 위한 10단계 조항’을 잘지키는 애기정성병원으로 지정을 받았다. 평양산원 근무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산모가 진찰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 남측 여성들 사이에서 “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과시하는 것에 너무 급급한 것 아니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군복 입고 가무 “평화 기대감 희석”

10만여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집단 창작 문화의 정수인 아리랑 축전은 북한의 자랑거리다. 북한은 당 창건 60돌을 기념해 ‘대집단 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하 아리랑축전)을 8월부터 10월까지 공연하고 있다. 5만명의 중학생들이 집단 카드섹션을 하며 푸르게 펼쳐진 잔디 광장에서 수천명의 무용단원들이 집단 무용을 선보였다. 전체 공연속에 녹아 들어간 개인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내용은 1940년대 항일운동부터 북한 사회의 건설과정,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메시지로 구성됐다. 
12일 오후 8시부터 1시간30분간 진행된 아리랑축전을 관람한 남측 여성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공연 자체는 뛰어났지만 개인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기분”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여성이 있는 반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단결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평화 통일을 하자면서 문화예술 공연에서조차 군복을 입고 총검을 흔드는 집단 가무를 보여주는 것은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희석화 시킨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11년간 의무교육

북한에선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6살에 유치원에 들어가 1년간 산수, 국어를 배우며 7살에 소학교에 입학해 4년간 교육을 받은뒤 중학교에 입학해 6년간 공부한다. 대학교는 사회 어문계열은 4년, 기계공학 등 공학쪽은 5년제로 운영된다. 이밖에 1∼2년제로 운영되는 기능대학과 전문대학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최고의 엘리트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졸업생들의 자긍심이 대단히 높다. 4년∼5년제 대학교에 재학중인 여성은 10%∼20에 불과하다고 북측 안내원이 전했다.
13일 방문한 창광유치원은 1982년 설립이후 현재까지 5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북측의 대표적 아동보육시설이다. 500여명의 아이들이 교실과 체육관, 무용실, 자연실, 춤실 등을 갖춘 10층 건물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숙식을 제공받으며 부모는 금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월요일 아침 다시 맡긴다.

최승희·신인영씨 애국열사릉에

방북 마지막 날인 14일 오전, 평양시 외곽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찾았다. 항일운동을 주도한 민족주의자들과 6.25 전쟁중 전사한 인민군, 북한을 빛낸 유명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김규식, 조소앙 등 항일 민족주의자로서 월북한 이들의 비석이 눈이 들어왔다. 신인영 씨 등 남한에서 장기수로 복역하다 북한으로 송환된 이들도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구석에 조선 민족 춤을 선보인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의 비석이 서있다. 남측 사람들이 비석 옆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모처럼 아는 이름을 발견해 반가왔던 모양이다.
마지막 행선지인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위치한 평양수예연구소에는 약 400명의 연구원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작업을 하고 있다. 정교한 수예 작품은 그림인지 수예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매달 1만원에서 2만원 가량 월급을 받는다고 북측 안내원이 전했다. ‘최후의 만찬’그림을 앞에 두고 한땀 한땀 열심히 수를 놓던 정순영(27)씨는 “주문을 받아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평양은 자본주의 물결에 몸을 싣고

“어디를 가나 김일성 주석 찬양과 우상화 일색이었다. 통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북한과 남한의 차이를 확인했다. 북한 사회 체제를 인정하면서 통일을 차분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광유치원에 갔을 때, 3∼4살 어린 나이부터 주체사상으로 세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4박5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뒤 여성들이 털어놓은 소감이다.
1991년 이후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14년보다 평양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시내가 훨씬 활기차 보여서 마음이 편해졌다”며 “평양 주민들과 다른 지역 주민들의 생활격차가 줄어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2005년 9월, 평양의 중심을 흐르는 대동강변은 공사가 한창이었으며 새로 짓는 건물도 눈에 띄었다. 관광지 곳곳엔 음료수, 기념품 등을 파는 안내원들이 배치돼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평양은 어느새 자본주의 물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묘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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