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가부장…구시대적 관념 강요

사소한 일인 듯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를 하나 지적하려고 한다.
얼마 전 밤 10시쯤 TV를 켰는데 국정홍보처와 정부해당부처에서 공동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공익광고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요즘 세간의 관심사인 부동산문제와 관련해서 더 이상 집값이 오르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할 테니 국민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라는 것이었다. 좋은 취지였고 또 시기도 적절한 것이었다. 과거의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든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면, 현 정부는 국민이 불안해하는 걱정거리에 대해 가끔 광고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불안을 덜고 안심시키려는 시도라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광고의 구성이었다. 40∼50대로 보이는,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듯한 중장년 남성 세 사람가량이 진지한 표정으로 집 문제를 걱정하는 듯한 장면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믿을 수 있는 것이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라는 의미의 멘트가 제시되었다.
내가 놀란 것은 내 집 마련은 남성만의 책임이자 남성만의 고민이 아닐 텐데도 광고는 ‘가족의 경제적 부양자는 역시 남성’이라는 구시대적인 관념을 절절히 호소하다 못해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이나 공무원들과 함께 하는 강의에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시민’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고. 서울시민이 되려면 최소한 서울에 방 한 칸이나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든지 그렇지 못하면 남의 집을 빌려 쓸 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전 국토가 부동산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는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고, 대다수 가족에게 이것은 남성 혼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번 공익광고뿐만 아니라 이전의 광고들에서도 이런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연령이나 직업적 서열, 경제적 능력 등의 면에서 지위가 높은 남성과 낮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든지, 전통적인 성별 분업을 그대로 재현한다든지…때문에 공익광고를 볼 때마다 더 걱정스러운 심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소한 광고 하나도 이렇게 성차별적인데 혹시 이것은 이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국가기구 자체의, 혹은 국가를 움직여가는 관료들 의식 속의 가부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새삼스레 국가가 앞장서서 성평등 메시지를 확산하는 스웨덴 같은 사회를 따라가자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국정홍보처 등 공익광고를 관리하는 부처에서는 광고를 제작하기 전에 최소한 여성가족부나 성평등 전문가의 사전 모니터링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어떤가 권고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선정적인 상업광고보다 더 불안한 마음으로 공익광고를 보고 싶지는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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