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제안

‘평등명절 캠페인’ 등 남성 중심(시댁 위주) 명절문화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지 6년이 지났다. 99년 한국여성민우회가 ‘평등명절’이란 명칭을 사용한 후 여성계, 시민단체,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움직임은 매해 명절마다 매스컴을 타며 일반인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확보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명절 관행상 ‘친정으로 쏠려 있는 마음’과 ‘시댁에 매여 있는 몸’ 사이에서 받는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명절이 다 지난 다음에야 친정에 가는 거죠. 딸도 다 같은 자식인데 ‘여자니까’ ‘친정이니까’란 이유로 뒷전에 밀리는 것이 속상할 뿐입니다. 몸은 시댁에 있어도 명절이 시작되면 마음은 일찌감치 친정에 가 있어요.”
결혼 6년차인 박은주(32)씨는 명절이면 되풀이되는 속앓이를 토로한다. 그는 ‘시댁과 친정에 평등하게 인사하러 가기’란 슬로건이 등장한 지 한참인데 아직도 친정에 가려면 은근히 눈치부터 살피는 자신이 싫다고도 했다.
무남독녀인 최선희(35)씨는 “아들, 며느리, 아이들로 북적북적한 시댁에 있다 보면 한없이 쓸쓸할 친정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며 “그래서 명절이면 몸도 마음도 아프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발표된 한 조사는 명절이면 친정으로 마음이 기우는 여성들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현대백화점이 자사 카드 고객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추석선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친정(처가)에 시댁(본가)보다 더 비싼 선물을 하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는 것. 조사 대상의 주를 차지했던 여성들은 친정 선물값으로는 10만∼20만 원(44%)이라 대답한 반면, 시댁 선물값은 5만∼10만 원(45%) 정도를 쓰겠다고 응답했다.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이번 조사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친정을 챙기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며 “핵가족 세대인 20∼30대 젊은 여성의 경우, ‘친정의 명절 나기’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고 전했다. 이는 여성들이 예전만큼 ‘시댁을 절대적으로 우선하지 않는’ 세태가 전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형제가 많지 않은 세대이니 만큼 양쪽 부모를 동등하게 부양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풀이한다. 
반면 ‘마음은 친정·몸은 시댁’ 스트레스 공식을 벗어나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명절을 보내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태완(35)씨는 “반드시 명절 내에, 시댁과 친정을 한꺼번에 챙기려 하지 않는다”며 “명절이 낀 주의 연휴와 주말을 이용해 똑같은 기간에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하며, 이를 남편과 시부모님도 기꺼이 양해해 준다”고 했다. 그는 “시댁에 몸이 묶인 채 친정 걱정으로 끙끙 앓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차근차근 설득해 양쪽 부모님을 다 챙기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설날은 시댁 먼저, 추석은 친정 먼저’ 등 각 가정의 상황에 맞게 법칙을 정하면 여성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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