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

예루살렘의 하루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알라후 악발, 알라는 위대하다” 동틀 녘,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지고 교회와 성당의 종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때로는 조화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그 소리들은 나 같은 얼치기 인간에게도 축복이다. 아! 정말 이곳은 신들의 땅이구나,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그 분 눈에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게 살아야겠구나…. 순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그 순간의 느낌은 예루살렘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의 종교가 숨쉬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으로의 순례 여행을 일생의 꿈으로 삼기도 하고 이 곳을 거룩한 축복의 땅이라 부르며 숭배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예루살렘은 저주의 땅으로 보인다. 로마제국의 예루살렘 정복과 유대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팔래스티나 이외의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현상), 중세 십자군 전쟁과 무슬림의 예루살렘 정복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소유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고 오늘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피 튀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신성한 바위, 예언자 모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바위. 하나의 바위에 얽힌 서로 다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그 바위 위에 황금 지붕을 한 사원을 짓고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싸워 왔다. 성전산에 올라 축구장 크기 만한 바위 돔 사원과 그 밑에 있는 통곡의 벽을 볼 때마다 그 땅을 지키기 위해 피를 뿌려온 인간의 한없는 어리석음에 분노를 느낀다. 인간은 왜 소리만도 못할까. 소리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잘도 공존하건만 인간은 왜 그러지 못할까….
실완은 바위 돔 사원과 통곡의 벽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는 마을이다. 고고학 발굴 결과 다윗 왕의 정원이 있던 곳이라 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심심찮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지금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다윗 왕이 거닐었던 정원을 복원해 고고학 공원으로 만든다는 예루살렘 시 당국의 정책 때문이다. “수천 년 전 왕이 가끔씩 들러 낮잠을 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88가구 1500여 명 주민이 길 위에 나앉아야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도 이곳에서 수백년 뿌리내리고 살았습니다. 이곳에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면 이렇게 함부로 주민들을 쫓아낸다고 했겠습니까?” 실완 마을의 청년 모함마드는 울분을 토했다.

‘다윗왕 정원’ 복원 위한 철거 발표에 이스라엘인들 반기

실완 마을 철거 계획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지난 7월의 토요일, 200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완 마을로 모여들었다. 교수도 있고 학생도 있고 디자이너도 있고 의사도 있고 심리학자도 있고 방송국 스크립터도 있고 지방신문 기자도 있었다. 참여자들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한번쯤 공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기 원한다면 공존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같이 사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같이 죽어야만 합니다. 공존만이 서로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파울라는 준비해온 장갑을 끼고 삽을 집어들며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쓰레기장으로 변한 마을 앞 공터를 청소했다. 비닐과 깨진 병으로 뒤덮인 땅을 갈아엎어 깨끗이 하고 흙탕물로 변해버린 실개천 바닥의 진흙과 쓰레기들도 모두 걷어냈다. “시 당국은 이곳을 철거하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대 표현이고 아랍의 이웃에 대한 지지 표현이며 이것이 바로 공존의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행사를 계획한 이리트는 실완 마을을 청소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내 조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길”

사회활동가 루스는 참여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왜 이렇게 힘든 일에 참여했는지 물었다. “나는 평생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내 조국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완은 힘 있는 나라가 힘 없는 이웃에게 가하는 폭력의 예입니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루스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이 땅에 왔다. “새로 건국한 조국 땅을 밟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조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웃 나라를 점령하고 파괴하는 조국을 보려고 이 땅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날을 보는 것이 내 소망입니다.” 성치 않은 다리와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루스 할머니는 오후 늦게까지 지치지 않고 일했다.
섬유디자이너인 타마는 솔직한 대답으로 나를 당황케 했다. 왜 참여했냐는 질문에 “내 양심의 평안을 얻기 위해…”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이스라엘의 긍정적 미래를 믿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아들이 나처럼 절망적인 현실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입니다.”
타마의 남편 피터는 이스라엘 방송국 카메라맨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그는 옛 솜씨를 살려 실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여러 가지 벽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벽이 아마 언론일 것입니다. 언론은 국가정책에 반하는 것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은 언론이 만들어 놓은 거짓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왜 자살폭탄을 할 수밖에 없는지, 진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내 남은 생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공존의 방법이죠.”

놀이터·실개천…작은 힘 뭉쳐 평화 실천

그 날 실완 마을은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마을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녔고 부녀자들은 귀한 손님들을 대접할 점심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실개울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청소를 하고 마을의 남자들은 돌을 날라다 실개천 위에 작은 돌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모두가 힘을 합해 한 그루 오디나무를 심었다. 갓 심은 나무가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햇살이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로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국제정치의 변화만이, 정치인의 사인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작은 힘이 뭉쳐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평화의 길이 아니겠는가. 공존, 같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우리를 꿈꾸게 하기에 충분히 유혹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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