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팔레스타인의 고통 ‘분리장벽’

2005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의 벽 건설을 국제법 위법으로 판결한 지 1년이 되는 날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빌린의 청년회장 모함마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그의 일터이기도 한 양계장 뒤뜰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고 있었다. 법의 상징인 천칭의 중앙에는 미국 국기가 자리하고 저울의 한쪽에는 국제사회를 나타내는 지구본이 다른 한쪽에는 이스라엘 국기가 달렸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전체보다 더 무거워 저울이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이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이스라엘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빌린 마을 벽 건설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모함마드의 말 속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벽 건설이 국제법 위반임을 판결해 놓고도 미국의 힘 없이는 아무 것도 실행하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무능력에 대한 비난이었다.

4개월째 ‘벽 건설 반대’ 비폭력투쟁

벽은 서안지구 640㎞를 따라 건설되고 있다. 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완전 점령하기 이전의 영토 경계선인 그린라인을 따라 벽을 건설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기본 방침이었다. 오슬로협정으로 그린라인을 양측의 영토 경계로 인정한 팔레스타인도 공식적으로는 그린라인 상의 벽 건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서안지구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린라인을 무시하고 벽이 세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는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올리브 밭을 파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마을을 두 동강 내고 가족을 이산시키고 사람들을 농경지와 직장으로부터 분리시켰다.
벽 건설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2003년 12월 유엔 총회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 결정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벽 건설의 법적 타당성 여부를 문의했고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벽에 대한 법적인 결론을 내렸다.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벽 건설은 국제법과 국제인권법 위반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벽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 이미 완공된 벽은 철거해야 하며 벽 건설로 인한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라….”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벽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 빌린 마을에서는 올 초부터 벽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마을은 그린라인으로부터 4.5㎞나 떨어져 있지만 벽은 마을 안에 건설되고 있다. 빌린 마을 인근에 있는 4개 정착촌 1만5000여 이스라엘 정착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벽을 그린라인 위에 짓게 되면 그 정착촌들이 벽 이쪽 팔레스타인 땅에 위치하게 된다.
물 역시 큰 이유다. 빌린 마을은 서안지구의 주요 수원지 중 하나다. 그러나 마을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우물은 저지대인 계곡에 있다. 벽은 이 계곡을 중심으로 건설되고 있다. “우리의 우물을 코앞에 두고도 한 달에 네 번 이스라엘이 공급해 주는 식수에 의존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먹을 물이 없어 고통받고 있는데 그들은 저렇게 공사장에 물을 뿌립니다.” 벽 건설 현장 바로 옆에 집이 있는 와지씨는 공사장의 먼지를 줄이기 위해 물차가 도로에 물을 뿌리는 것을 보며 분노에 떨었다.
이런 분노가 모여 빌린 마을의 벽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매주 금요일 기도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미 잘려나간 올리브 나무들과 빼앗긴 수자원과 마을 땅을 되돌려 주길 요구하며 공사장 부근까지 행진을 했다.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의 지지자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는 점점 커졌고 빌린 마을의 벽 건설 반대 비폭력 투쟁은 지금 4개월을 넘기고 있다.

식수 없어 고통받는데 공사장 살수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결정을 존중하라!” “서안지구의 모든 벽을 허물자!” 모함마드가 만든 조형물을 들고 시위자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마을 모스크에서 공사 현장까지 약 500m. 하지만 이스라엘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길을 막았다. “이곳은 군사지역이다. 철조망을 넘지 마라. 어기면 발포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경고방송에 시위대는 멈춰 섰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위법임을 판결한 벽 건설. 그 불법의 현장을 눈앞에 두고 있건만 시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철조망 앞에서 기도 드리는 것 외엔…. “벽 때문에 사라져 버린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을 되찾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 벽이 정신마저 파괴하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소서…” 마을의 셰이크(마을의 연장자, 존경받는 사람)는 그렇게 기도를 인도했다.
그들이 평화의 기도를 올리던 그 시간, 빌린의 이웃 마을에서 한 아이가 죽었다. 15세의 메이윱. 마을에서 벽 공사 중이던 불도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한 소년을 향해 무장 경비원이 총을 쏘았다. 총알은 아이의 가슴을 관통했다. 하지만 아이는 병원으로 가지도 못했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리기 전에는 부상자를 데려갈 수 없다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시간을 끄는 바람에 아이를 후송하기 위해 도착한 앰뷸런스는 담장 밖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 그동안 아이는 피를 흘리며 땅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날 빌린 마을에서도 몸싸움이 있었다. 좀 더 공사장 가까이 접근하고자 하는 시위대를 향해 군인들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아댔고 많은 부상자가 났다. 동네 청년 한 명이 고무탄을 머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나와 동행 중이던 카메라맨도 고무탄이 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작은 부상을 입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걱정스러워 하는 나에게 의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겐 일상 중 하나죠.”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됐다. “환자가 어지러워하는데, 링거라도 좀….” 졸라대는 나를 의사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약품은 피 흘리며 죽어 가는 응급환자들에게 줘야 합니다. 이곳에 조금만 있으면 내 말을 이해할 겁니다.” 카메라맨의 엑스레이 사진이 나오길 기다리는 30분 동안 나는 그 의사의 말을 100% 이해했다. 수많은 사람이 응급실로 실려왔다. 머리가 깨져 피 흘리는 아이, 가슴에 고무탄을 맞아 호흡곤란을 겪는 청년, 다친 아들 뒤를 따라오며 어머니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아수라장에 메이윱을 실은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아이는 완전히 식어 있었다.

국제사회 못 믿어 ‘알라만이 힘’

인티파타(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항거운동) 이후 수없이 죽어간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이 그랬듯 메이윱은 영웅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 남았다. 그의 장례식에 모여든 사람들은 메이윱 가족의 비극과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절망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메이윱, 너는 진정한 순교자, 걱정하지 말고 가거라. 우리가 너의 뜻을 따를 것이다.” 메이윱의 어머니는 얼마 전 다른 아들을 잃었다. 그 아들도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 슬픔에 지친 어머니는 별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평화회담도, 국제사회의 도움도 믿지 않았다. “우리에겐 힘이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알라 당신만이 나의 힘입니다. 강하고 강한 당신만이 우리를 위해 복수해 줄 것을 믿습니다.” 아들의 시신이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국기에 덮인 메이윱의 시체가 ‘빌린’의 벽 공사장 옆을 지날 때 누이가 오열했다. “국제사회의 양심들, 팔레스타인을 친구라 부르는 아랍국가들, 당신들은 다 어디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동안 당신들은 지금 무얼 하는가.”
이스라엘의 벽 건설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는 위법을 판결했다. 국제사회는 그것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믿는 듯하다. 나머지는 국제정치와 슈퍼파워 미국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에 눈감았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향해 묻고 있다. 자유와 정의 운운하는 당신들은 무얼 하고 있냐고. 우리는 진정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도움의 손길을 그토록 간절히 필요로 하는 지금, 평화를 이야기하고 정의를 외치는 한국의 지식인들과 양심들, 당신들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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