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중에 매달린 그림

“선생님, 이 그림은 어디다 걸어야 하나요?” 얼마 전 평창동 ‘이응노 미술관’ 에서 열린 재미화가 최일단씨 작품전에서 공중에 매달려 늘어진 ‘그림’이 참 멋있어서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글쎄, 개인 집에선 공간이 너무할 것 같고 아무래도 큰 건물이나 공공장소가 낫지 않을까요?” 최일단씨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매달린 그림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해봤다.
새롭게 가정에서도 벽에 거는 그림뿐만 아니라 칸막이 구실을 하는 그림, 나아가 방 한가운데 또는 구석에 ‘조각’처럼 서있는 그림이 가능하지 않을까.
평론가 이규일씨가 ‘전천후 미술’이라고 평했던 최일단씨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나를 감격시키며 오래 붙들어둔 것이 바로 공중에 매달린 ‘그림’이었다. 좋았다. 매달려 있는 형태뿐만 아니라 때로는 바느질로 조각보처럼 이어져 있었고 또 한구석엔 먹 글씨가 범상치 않게 들어있는 그림. 무려 2년 6개월이 꼬박 걸린 대작이라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으니까 앞과 뒤의 표정이 서로 다르다. 작가에겐 실례될지 모르겠지만 감상자 쪽에선 그것 또한 더 멋진 일이다. 그림 하나로 두 개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니….
나의 경우 집안을 정리하다보면 그림을 걸어둘 벽이 없어 고민할 때가 많았다. 이 그림도 걸고 싶고 저 그림도 가까이 보고 싶은데 집의 벽면은 한정돼 있고 요즘은 특히 창문이 크고 많아 영 그림 걸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공중에 매달린 그림들은 그런 점에선 우리들에게 멋진 상상력을 듬뿍 안겨주는 것 같다.
나는 이걸 늘어뜨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변하는 빛과 그림자, 정면과 역광, 앞과 뒤의 다른 ‘그림’들을 항상 새롭게 즐기는 상상을 해봤다.
올 봄에 감명 받았던 재불 화가 방혜자씨의 작품에도 이와 비슷하게 공중에 걸린 그림이 있었는데 이렇게 공중에서 늘어뜨리는 그림을 집안에서 감상하는 시대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왜 안 되겠는가. 조각 작품처럼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때로는 칸막이 구실도 하는 그림. 그림은 꼭 벽에 걸어두고 보는 것이란 생각을 바꾸면 집안에서 그림과 친해질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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