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 정책관

10년 전 베이징 여성회의(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 열기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한국 여성 NGO위원회 ‘대변인’이란 역할로. 이후 외교 무대 한가운데서 가끔 볼 수 있었던 그는 10년간의 베이징 행동강령 이행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지난 3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49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 의장으로 활약했다. 10년 전 여성운동계와 맺은 인연은 그와 지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지평이 넓어졌다. 스스로 말하듯 10년 전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NGO로 뛰어 놀던 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을까.

외교통상부 강경화(50·국장) 신임 국제기구 정책관을 새 업무 시작 일주일 만인 7월 26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외교부 여성 국장 1호를 기록한 김경임 주 튀니지 대사의 바통을 이은 강 국장의 이력은 상이하다. 김 대사가 외무고시 출신 여성 1호를 기록한 정통 외교관료 출신인 반면 강 국장은 안정적인 교수직을 접고 98년 외교부 전문가 특채에 응시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김경임 대사에 이어 여성 대사의 맥을 이어갈 강력한 후보군에 그는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
“언론이 너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럽다. 웬만하면 인터뷰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될 정도로…아이들(2녀 1남)은 처음엔 이번 부임을 심드렁해 했으나 신문에서 내 기사들을 발견하곤 놀라워했다(웃음)”

교수직 접고 외교부 특채 응시
문화 간 의사소통에 큰 관심

그는 세 아이와 함께 한 뉴욕 생활보다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좀 더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울에 온 지 2주 동안 아직까지 쓰레기 문제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그 자신 으레 새벽에 집을 나와 자정 넘어 귀가하는 데다가 남편(이일병 연세대 전산학과 교수)이 미국에 남겨두고 온 아이들을 만나러 갔기에 주택가 쓰레기 수거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강 국장은 연세대 정외과 졸업 후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 세종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다 국회의장 국제의전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외교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유학 전엔 KBS PD 겸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했는데, 그의 부친 역시 50, 60년대 한국 현대사의 주요 현장을 뉴스로 전했던 고 강창선 아나운서였다. 부친의 직업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 3년여가량을 워싱턴에서 보냈고, 이때 현재의 탁월한 영어 실력의 기초를 닦았다. 대학에서의 전공과 미국 유학 후의 전공은 그의 향후 진로에 적합한 배합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 특히 나라와 나라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더해 끊임없이 ‘말’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그는 매사추세츠 주립대 박사논문 주제로 서로 다른 문화권 간의 의사소통법을 택했다. 이는 외교관으로서 상황인식에 대한 감각을 길러준 배경이 됐다. 그리고 여기에 페미니즘의 세례가 더해졌다.
“95년 베이징 여성회의는 내 개인 삶에 있어서도 큰 계기가 됐다. 그 이전엔 막연히 성평등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리고 이것이 주변적인 의식에 그치는 줄로만 알았지만, 베이징 회의에서 여성들의 관심사가 전세계와 유엔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때의 첫 느낌은 ‘내 물을 찾았구나’라는 거였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함께, 그리고 편하게 일할 활동무대와 동료들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막상 학교로 돌아가 보니 내 성향이 ‘행동지향적’임을 깨달았다. 이후 국제무대 본류에 들어가고파 기회가 생겼을 때 외교부 특채에 자원했다. ‘제발 저 좀 써주세요’라며(웃음)”   

95년 베이징회의 계기
여성문제 관심갖게 돼

강 국장은 2001년 주 유엔 한국대표부 공사참사관에 임명된 뒤 2003년 45개 회원국 대표 만장일치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여성지위위원회 의장으로 일하기까지 뉴욕에서 4년을 보냈다. 그 곳에서의 주 업무는 인권, 사회, 인도적 지원. 각국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똑 소리 나는 외교관들을 만나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협상을 하면서 사람 사귀는 재미를 톡톡히 알았다. 그 중에서도 신혜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에 선출되고 또 위원 재선에 성공한 것이나 이양희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가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유엔 산하 인권기구에 한국의 여성 리더들을 진출시킨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신혜수 위원의 경우 170여 나라의 표를 하나 하나 모아야 하기에 170여 개 이상의 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기분으로 주력했는데, 당시 북한 쪽에서도 지지를 보내와 뿌듯함을 느꼈다고.
그리고 올해 3월 열린 제49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가 있었다. “아직까지 유엔 회의 중 그토록 대규모의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는 95년 베이징회의 만큼이나 여성지위위원회 회의는 특별했다.
“의장 생활 1년간은 베이징 회의 10년을 평가할 49차 여성지위위원회 회의 준비로 바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여 나라에서 GO 1800여 명, NGO 3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회의였다. 회의 결과 베이징 여성행동 강령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지만, 말이 쉽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95년 당시 중점 추진 사항이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달라진데다가 나라별 이견도 만만치 않았다. 선언문 채택 막바지까지 줄다리기를 했지만 결국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순간 유엔의 모든 대표들이 서로 즐거워하며 칭찬하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유엔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다자 외교의 전문가’란 평가를 부여했다. 그 자신도 여기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다.
“지금처럼 뉴욕에 있든 위싱턴에 있든 이 지구상 어디에 있든지 간에 유엔은 유엔이다. 유엔에선 전 세계가 한자리에 모여 인권, 사회개발, 군축 등 모든 공통 이슈를 논의하고 공동 행동과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하나의 이슈를 놓고서도 한눈에 세계가 돌아가는 것이 보이고, 나라 군들이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 흐름을 읽어가면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가지고 이를 어떻게 국제사회에 관철시켜 나가느냐가 바로 다자 외교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현재 강 국장에게 떨어진 현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개혁이고, 구체적으론 상임이사국의 확대 저지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이다. “명분 있는 싸움”이라는 데 그는 도전욕을 느낀다.
“보다 더 민주적이고 투명하며 책임감 있는 안보리를 위해서는 상임이사국 확대는 종전 취지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몇몇 국가들과 연대해 비상임 이사국의 증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의 현실이 꼭 명분만 따라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의 국익을 우선한 이해관계, 정치력, 경제력 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난한 싸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정신대 문제를 비롯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리더십을 국가가 발휘하려면 스스로를 (과거사에서) 해방시키는 용기 있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日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명분 있지만 힘든 싸움될 것

그는 외교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접한 세계의 많은 리더들 가운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을 인상적인 인물로 꼽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선 상대방의 말을 백퍼센트 경청하며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배려하는 자상한 리더십을, 할로넨 대통령에게선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는 소리 없는 가운데 큰 일을 해내는 조용한 리더십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의 롤 모델은 무엇일까.
“사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롤 모델은 없다. 굳이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외교 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타협의 정신, 실용주의 노선 등이 능력 있고 준비된 여성에게 참 잘 맞는다는 것은 실감했다. 그래서 여성의 외교가 진출에 대해선 희망적이다. 특히 현재 주니어 그룹에선 굳이 ‘여성특혜’를 따질 필요 없이 여성 외교관의 수가 많아졌기에 고위직 진출이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문제? 기본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는 여성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그가 선택한 배우자 역시 그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여성 외교관이라 더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예전에 비하면 여성이 외교관으로 의욕적 활동을 펼치기에 좀 더 유리한 조건이 갖춰져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기구 정책관 임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이연숙 전 의원, 신혜수 유엔여성차별철폐위 위원 등 그도 놀랄 정도로 많은 여성계 인사들이 따뜻한 축하를 전해왔다. 며칠 후면 그의 영어통역 실력을 칭찬해마지 않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찾아뵐 계획이어서 이래저래 앞날에 대한 묵직한 책임감과 함께 격려의 무게도 더해질 터였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그것도 아주 첨예하게 도전적인 일을 감연히 택했고 그 일과 ‘사랑’에 빠진데다가 ‘실연’당하지 않고 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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