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

67년, 6일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그리고 지난 38년간  점령과 저항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그 피 흘림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지금 준비 중이다. 2005년 8월 15일 정착민 가자지구 철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의 철수는 평화 정착을 위한 로드맵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철수한 뒤 온건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이 지역을 잘 통제해 평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면 서안지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철수를 한 달여 남겨놓은 지난 7월 중순, 이스라엘 외무부의 대변인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정부, 8월 15일 가자지구 철수 발표
정착민·팔人 모두 불신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런 미래를 믿지 않는다. 가자 사람들이 하마스의 카삼 로켓을 가자의 자부심으로 느끼는 한 이스라엘 정부가 말하는 소위 ‘온건한 지도자’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안다.
“그들은 언제나 평화를 말하지만 한번도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이런저런 구실을 찾아 다시 눌러 앉을 겁니다”
정착촌 바로 앞 자신의 농장 주위를 순찰하는 거대한 이스라엘 탱크를 두려움의 눈으로 바라보던 팔레스타인 농부 모함마드가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철수 계획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는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민들도 마찬가지다. 가자지구에는 9000여 정착민이 산다. 대부분 농부들이다.
“30년 전 어머니 손을 잡고 도착한 이곳은 모래뿐이었습니다. 먹고 남은 음식을 던져줄 고양이 한 마리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사막을 옥토로 만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표본 같은 이 농부들은 황무지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연 매출 1억2000만 달러. 가자지구 정착민들이 생산하는 농작물은 이스라엘이 해외로 수출하는 유기 농작물의 2분의1 이상을 차지한다.
“이 곳 말고 어디서 이런 땅과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파셀리 농사를 짓는 한 농부의 말처럼 경제적 이유는 정착민들이 떠나려 하지 않는 배경 중 하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신은 우리에게 이 땅을 약속했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정착촌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는 라헬처럼 종교적 이유 때문에 가자를 떠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가자지구의 21개 정착촌을 통칭하는 ‘구쉬 카티프’.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곳의 풍경은 나무의 푸름과 붉은 색 지붕을 한 아름다운 집과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로 풍요롭고 여유롭다. 영어교사 라헬과 퇴역군인인 그녀의 남편 모세는 부러울 정도로 안락해 보이는 유럽풍 거실에서 나를 맞아 주었다. 벽에는 라헬이 그린 아름다운 스케치들이 걸려 있고 에어컨으로 공기는 쾌적했다. 37년 전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이들 부부는 8년 전 구쉬 카티프에 들어왔다. 

가자지구 21개 정착촌 ‘구쉬 카티프’
대부분 고수익 농가 ‘풍요로운 삶’

“이곳에 온 것은 종교적 의무감 때문입니다. 바로 지척에서 매일 로켓포를 쏘아대는 이웃들이 있지만 상관치 않습니다. 신은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는 신이 베푸는 기적을 목격하며 삽니다”
며칠 전 집 앞마당에 떨어졌다는 카삼 로켓포의 잔해를 보여주며 라헬은 그녀의 믿음을 이야기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봉기) 후 이곳은 6000여 발의 카삼 로켓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망자는 단 한 명뿐입니다. 이걸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라헬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그들이 신이 약속한 땅을 지키며 신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는 동안 기적은 계속되리라 믿고 있었다. 레바논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한쪽 팔과 세 손가락을 잃은 모세는 단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우리는 절대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죽으면 모르죠…”
라헬과 모세의 집에서 지척으로 내다보이는 곳에 가자지구 제2의 도시 칸유네스가 있다. 차로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바로 갈 수는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키수핌 검문소를 지나 가자지구를 벗어난 다음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이 통행하는 에레즈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온종일이 걸리는 긴 여행 끝에 찾아간 칸유네스의 풍경은 쿠쉬 카티프와는 전혀 달랐다. 거리는 먼지투성이였다. 사람들은 멍한 눈을 하고 햇볕이 쏟아지는 거리의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자살폭탄이나 이스라엘 공격으로 숨진 ‘순교자’들의 포스트만이 도시를 숨쉬게 하는 듯 보였다. 가난과 분노로 터져 버릴 것 같은 이 도시에서 나는 28세의 오마르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팔人 거주지 가난·분노 팽배
“자살폭탄만이 삶의 유일 목적”

오마르는 자살폭탄을 준비한다.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12명 식구가 모여 사는 좁은 공간에서 칼리시니코프 총을 청소하며 죽음을 대비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왜 말리지 않죠?” 내 질문에 어머니는 그저 침묵했다. 대신 오마르가 입을 열었다.
“아무도 나를 말릴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땅을 점령하던 날,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개처럼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
가자의 경제는 이스라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스라엘의 노동력 부족을 팔레스타인의 값싼 노동력이 대체해 주는 것이 이 지역 경제법칙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경을 넘는 통행증은 가자 사람 누구에게나 생존과 직결되는 소중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점을 이용했다. 가족 중 자살폭탄자나 무장단체 관련자가 있으면 가족 모두에게 통행증을 주지 않는다. 통행증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통제하는 방식이고 그들을 옭아매는 족쇄인 셈이다.
오마르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형제 중 3명이 무장단체에 관련돼 죽었다. 당연히 통행증 발급이 거부됐고 가자 땅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담배나 피우고 카드놀이나 하며 시간을 죽이기에는 그는 너무 젊다. 그것이 그를 자살폭탄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 막지 않느냐고 했습니까?” 오마르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87년 남편과 친정 동생이 죽었습니다. 이후 눈만 뜨면 가족이나 친척의 죽음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자식 3명이 순교자가 됐습니다. 막을 수만 있었다면 나는 뭐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건 절박함 때문입니다. 어미지만 내가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총을 청소하는 아들 옆에 앉아 부품 하나하나를 집어주는 것이 어머니가 오마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같은 땅에 살지만 정반대의 삶
서로에 희망 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같은 땅에 살지만 정착촌 영어교사 라헬과 오마르의 어머니 카르드라드의 삶은 너무 다르고 생각은 더욱 더 다르다. 라헬은 이 땅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생각하고 오마르의 어머니는 이스라엘인들이 이 땅을 떠나야만 삶다운 삶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면 아들은 더 이상 자살폭탄을 꿈꾸지 않으리라는 것이 어머니의 희망이다.
극한 상황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꽃이 아니라 잡초다. 누군가가 물 한 방울만 던져줘도 죽어가는 희망은 생기를 찾을 수 있다. 구쉬 카티프와 칸유네스를 오가며 나는 두 가족이 서로에게 희망을 꽃피울 물이 되어 줄 수 없는 상황을 원망했다. 그러나 잡초는 쉽게 죽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희망이 있는 한 인간은 위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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