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기청장 표창 원혜은 우리옷 元빔 대표

우리 옷 한복을 문화로만 인식한다면 한복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어요. 한복의 산업화가 이뤄져야 한복의 문화적 가치도 더 확산될 것입니다”
‘한복의 산업화가 우리 옷을 세계화하는 지름길’임을 주장하는 원혜은(47) 우리옷 원빔 대표는 지난 6월 24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창립 6주년 기념식에서 서울지방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다. 원 대표는 전통복식연구가이자 디자이너로 2004년 전통복식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학위(명지대학교 의상학과)를 취득해 세간의 이목을 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번 표창으로 “한복이 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밝힌  그는 방송의상 제작 및 2002한·일월드컵 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전야제 전통복식 패션쇼 진행 및 FIFA 월드컵 공식행사 복식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을 만큼 전통복식 고증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전통의상을 산업화해서 세계 패션계에 꿋꿋이 자리잡은 것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외국 유학세가 강한 패션업계에서 한복은 조금 과장하면 찬밥신세이다. 대부분 혼수한복을 제작하거나 생활한복 분야, 문화행사의 고증복식 패션쇼에 가끔 등장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대학·전문대학 내 한복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드물다. 이들에게 ‘한복’은 비전 없는 산업분야일 뿐이다. 그는 지금 ‘한복산업조합(가칭)’창립 준비에 한창이다. “약 10만 명이 종사하는 산업분야이지만, 별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보니 아직도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남아있다”며 “조합설립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숙제”라고 강조한다
원 대표가 한복을 자신의 평생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85년.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나 지난 뒤이다. 의상학을 전공하고 “당연히(?) 대기업 의류회사 디자인실에 취직”할 줄 알았는데 디자이너는커녕 매장 판매직에도 취업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취업재수를 하면서 심한 좌절감에 빠진”그는 동기생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한복쟁이’의 길을 선택했다. 
“한복 바느질은 옛날부터 고생스런 여자의 일생을 대변해왔죠. 대학까지 졸업하고 한복을 만들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얼마나 팔자가 사나우려고’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많지 않았던 시절, 종로 2가 주단골목에서 바느질부터 다시 배웠다. “나름대로 고학력”이라는 것이 그곳에서는 오히려 장애였다. 아주머니들은 기술 전수를 해주지 않았고, 청소와 심부름 등 허드렛일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왜바지(몸뻬)에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묵은 채로 동대문에 갔다가 동기생을 만났어요. 대기업  디자인실에 있던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나는 인생 실패자였죠”
한 평 반 작업공간에 미싱 하나 놓고 한복을 만드는 신세가 너무 싫어진 그는 ‘뉴욕 유학’을 결심했다.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며 “네일숍에서 흑인 여성들의 발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히려 한복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깨달았다.“TV에서 어쩌다 한복이 나오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9개월을 버텼고 그동안 생리가 멈출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도 겪었다. 결국 91년 귀국, 부모님의 도움으로 10평 반짜리 사무실을 얻어 간판도 없는 원혜은한복연구소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예전 그의 고객들이 알음알음 찾아왔다. 당시 한 벌에 25만 원 하는 한복을 만들었는데 첫 달 매출이 970여만 원에 달할 정도로 그의 한복은 인기가 좋았다. 경제적인 성공에 이어 38세의 나이에 중앙대 의상예술학 석사, 명지대학 의상학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월간 잡지‘아름다울 美’를 발행하는 등 그의 한복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올 9월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초청 받아 패션의 본고장에 데뷔하는 원 대표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이는 자신의 실력을 넘어 ‘우리 옷’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원 대표는 앞으로 ‘한복 아카데미’를 세울 계획이다. “무대의상, 생활, 패션 등 각각 분야에 맞는 한복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론과 실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그의 열정이 많은 후학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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