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노인 선진국 일본의 복지제도와 고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연내 20%를 넘어서고, 2030년엔 3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노인 인구가 3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세계 최장수국, 대표적인 고령국가가 된 일본에서는 노인을 돌보는 행위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노동의 의미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다. 수년 전 우에노 지즈코(도쿄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의 수발과 간병이 여성에게 집중 부과되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며 “(노인 봉양을 거부하는) 나쁜 며느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단언함으로써 노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에 따른 정책 법 제도의 변혁을 촉구한 바 있다.
일본은 60년대부터 고령화 사회에 대비를 해왔다. 63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이래 90년에 이르러 골드플랜을 실시, 8개 관련 복지법을 개정했다. 94년엔 이미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 그해 4월 후생성 내 고령자개호대책본부를 설치하게 됐고, 95년 2월 노인보건심의회에서 개호문제에 대한 심의를 시작했다. 96년 11월 현재 일본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개호보험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97년 12월 개호보험법이 제정됨으로써 2000년 4월 개호보험법이 시행돼 오늘에 이르렀다. 99년 4월부터는 전 기업을 대상으로 노부모 간병을 비롯해 가족 간호를 위해 일시적으로 휴직할 수 있는 ‘간호휴직제도’를 의무화했다.

2030년 노인인구 30% 달해…경제성장 속도 이미 추월

개호보험 시행은 일본의 복지제도에 있어 하나의 ‘혁명’이었다. 개호보험을 통해 국가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대폭 바뀐 것. 개호보험 이전엔 방문 개호나 특수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고령자의 입소 등은 행정기관이 주는 혜택적인 복지로 인식됐으나, 이젠 이런 서비스와 관련 시설을 고령자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이용자 주체의 복지, 일반적인 서비스로 그 개념이 변했다. 내용 면에선 서비스의 ‘질’이 우선되는 경쟁체제로 접어듦에 따라 획일적인 서비스에서 이용자 중심의 맞춤 서비스로 변화해가고 있다.
2002년 현재 후생성 개호보험사업 상황 보고에 따르면, 노인 입소시설은 총 5001곳으로, 이 중 민간 영리시설은 131곳 2.6%, 사회복지법인 민간 비영리 시설은 4290곳 85.8%, 공공시설은 580곳 11.6%를 차지하고 있다. 노인 재가시설의 경우, 총 6만4042곳으로 이 중 민간시설이 1만1085곳 17.3%,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등 민간 비영리시설 5만548곳 79.0%, 공공시설 2389곳 3.7%다.
노인복지 관련 사업이 활성화됨에 따라 전문인력의 질 향상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노인 수발을 비롯한 간병 전문인력은 ‘홈 헬퍼(home-helper)’와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진 ‘개호복지사’로 대변된다. 홈 헬퍼는 재택 고령자, 장애인, 편부모 가족에 대해 가사 서비스나 개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보다 좀 더 총체적인 의미에서 ‘케어 매니저(care-manager)’란 전문직이 있는데, 이는 개호보험제도상의 ‘개호지원 전문원’이다. 케어 매니저는 개호보험 이용자나 그 가족의 상담에 응해 제일 적합한 개호계획을 작성하고 지방자치단체, 재택개호서비스 사업자, 개호보험시설과 긴밀히 연락해 이용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케어 매니저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전문직으로 코디네이터, 지역 프로듀서 등도 있지만 직종이라기보다는 역할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노인복지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돈’ 문제다. 이와 관련해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더 이상 아니다…예방과 자활 강조

일본에선 개호서비스 대상자가 시행 초기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남에 따라 국가의 지출액은 2003년 5조7000억 엔, 2004년 6조1000억 엔에 이르는 등 나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같은 지출 규모는 일본의 경제성장 속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부에선 이미 일본의 경제성장률에 연동해 연금지급 한도를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해왔고, 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을 감소하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 지출 삭감도 고려하고 있다.
물론 노인복지와 관련된 새로운 사업 분야가 창출되고 고용이 증가하는 등 경제적 효과도 분명히 있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사회복지의 이상향을 백퍼센트 실현할 수 있는 국가란 지구상에서 현실적으로 존재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바로 고령자에 대한 과잉 복지 혜택의 ‘절제’와 고령자 자신의 자활 독립 의지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고령자가 집에서 말기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에 공공 의료복지와 자원봉사 조직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노력, 이용 서비스에 대한 자기부담률의 차별적 적용 등이 논의되고 있다. 가령, 케어 매니저가 고령자의 상태를 보고 1개 모니터가 부착된 개호침대를 권했을 때 서비스를 받는 고령자 자신이 3개 모니터가 부착된 개호침대를 사용하기를 고집한다면 그 고령자의 자기부담률을 10%에서 20%로 높이는 것이다.
노인 관련 시설들은 시설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장 나답게’ 노년을 보내고 또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시설 이용 노인들에 대해 최대한 자율성을 확보해주는 추세다. 
한편에선 경제활동인구의 고령화가 불가피해지고 있고, 이를 적극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근로자 평균연령 고령화… 노인채용 기업에 우대조치
 
지난 6월 3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령화 사회 백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지난해 10월 총 248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5%를 차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90세 이상은 101만6000여 명, 100세 이상은 2만3000여 명에 달했고, 이 중 65세 이상 노동인구는 490만 명으로 전체의 7.4%에 달했다. 이 추세로 가면 2015년엔 노인 인구 중 노동인구는 724만 명, 11.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07년엔 전후 ‘베이비 붐’ 세대 격인 ‘단카이 세대’(1946∼51년생)가 60대로 접어듦에 따라 노인인구의 경제활동률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젊은 신입사원의 채용이 어려워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고령 근로자의 고용을 연장, 2003년 현재 근로자 평균 연령이 40.3세에 달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기업의 의무 고용연령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노인 고용에 적극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노인들 스스로 자기정체성과 사회참여 의식도 높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자 협동조합’으로, 노년생활의 자립을 위해 노인들 스스로 출자하고 조합원이 되어 직접 생활물자를 생산하는 동시에 또 구매자가 되는 고령자 중심의 생활협동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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