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란 여성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내 중심가 빌딩 벽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폭탄 그림과 그 밑에 쓰인 ‘다운 다운, 유에스(Down, Down, US)’. 테헤란의 거리를 특징짓는 건 반미 구호와 벽화들이다. 특히 옛 미국 대사관 담벼락에 그려진 악마의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과 근엄한 호메이니의 얼굴은 이란을 지배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악의 축(axis of evil)의 나라! 부시 대통령이 단 3개의 단어로 규정지어 버린 이란의 모습은 이란 여성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도 직결된다. 검은 차도르에 갇힌 억압받는 존재! 하지만 이란을 수차례 취재하며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란 여성들을 보았다. 내가 만난 여성들은 분출하는 에너지와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히잡은 신념의 상징적 표현 차도르가 날 구속하지 않아”

“히잡은 내 신념의 상징적 표현일 뿐입니다. 차도르가 나를 구속하지는 않습니다” 외무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레일라의 말처럼 차도르는 ‘샤’의 부패에 저항했던 이슬람 혁명의 명분이었고 상징이었다.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낸 호메이니가 돌아오던 날 공항은 검은 차도르의 여성들로 가득했다. 미니스커트와 청바지를 즐기던 여성들이 스스로 차도르에 몸을 가리고 혁명에 앞장섰다. 그 전통은 혁명 2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란의 여성들은 차도르를 입은 채 국회에서, 관공서에서, 대학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하기갓 주 교수는 이슬람혁명 후 이란을 이끌고 있는 30대 젊은 세대의 대표 주자다. 대학 시절, 개혁과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했던 그녀는 하타미 대통령 개혁정부의 제6차 마즐리스(이란 국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290명 국회의원 중 여성은 단 13명. 눈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확인하기 힘든 적은 수였지만 그녀들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매서웠다.
하기갓 주 의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이고 도전적인 발언으로 국회를 이끌어 갔다. 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혁명수호의원회를 비판해 구속되기도 했고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파 후보들에 대한 보수강경세력의 탄압에 항의해 국회의원 집단 사퇴를 주도했던 것도 그녀였다. “자유, 평등, 지역자치…, 혁명 당시 소리 높여 외쳤던 구호들 중 제대로 쟁취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개혁정부의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고 혁명수호위원회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슬람혁명의 이념은 우리의 꿈이고 꼭 쟁취해야 할 개혁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검은 차도르 속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은 개혁의 열정으로 강렬하게 빛났다. 

대학진학·전문직 여성 급증 이슬람 혁명 후 ‘기회’ 늘어

79년 이슬람혁명 후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의 여성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학교에 여선생이 없기 때문에, 학교가 이슬람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도 혁명 후 태도를 바꾸었다. 이슬람화한 교육제도 하에서 교육을 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여성이 교육의 기회를 얻었고 여대생 수가 급증했다. 여성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을 연기하고 사회적 존경을 획득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일하는 전문직 여성이 늘어났고 노동시장 구조도 변했다.
2001년 4000만 명을 넘어선 이란의 잠정 경제활동인구 중 60%가 여성이며 이들은 노동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차도르로 상징되는 이슬람 혁명이 여성이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손볼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란 동성애자들의 삶을 담은 그녀의 작품은 해외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신정국가 이란,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거리 어디에서나 감시의 눈길이 없는 곳이 없는 이란의 현실을 생각하면 동성애자들을 영상으로 담아낸 손볼은 특이한 소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스트 그 이상의 존재다.
“우리에겐 모든 것이 다 금지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는 것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모여서 그저 춤추고 즐기는 것뿐인데도 체포돼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이 두렵지 한두 번 잡혀가다 보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젊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원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누가 그 욕망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에서는 젊다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조차 즐기고자 노력합니다”
외모는 히잡으로 머리를 가린 전형적인 이란 여성이지만 손볼의 마음속에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자유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 있다.

동성애·성형·다이어트 유행 개방·변화의 바람 거세질 것

이란은 손볼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으로 빛나는 사회다. 비록 제도는 이슬람 혁명의 가치에 갇혀 있지만 사람들은 자유롭게 숨 쉴 탈출구를 만들며 살아간다. 이란 여성들의 특별한 패션감각은 그런 이란의 오늘을 잘 말해준다.
검은색 포대 자루 같은 차도르를 덮어쓰고 다니는 이란의 여성만을 상상해왔다면 아마 테헤란의 거리는 충격일 것이다. 머리와 목과 신체 중요 부분을 모두 가려야 하는 히잡의 엄격한 규정 속에서도 여성들은 다양한 자기 표현을 연출한다. 머리만 살짝 가린 스카프는 히잡이라기보다 액세서리에 가깝다. 신체를 가리기 위해 입은 겉옷도 가린다기보다 오히려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거기다 이란에선 뚱보 아줌마가 별로 없다. 살이 붙은 몸매를 섹시함의 상징으로, 절구통 같은 허리와 주체하기 힘든 가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랍의 여성들과는 달리 이곳엔 다이어트란 개념도 있다.
테헤란에선 공원에서 조깅하는 여성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다. 성형수술도 유행이다. 낮은 코를 세우는 우리에겐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곳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코 낮추는 수술을 한다.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여성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인 여성들, 그들이 선정적이기까지 한 히잡을 하고 누비는 테헤란의 거리는 같은 여자인 나도 즐겁게 해주는 에너지가 살아 있다.
지난 6월 17일 실시된 선거에서 이란에선 이슬람혁명의 계승을 강조하는 보수파 대통령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세대와 여성 유권자들, 그리고 빈민계층이 개혁세력에 등을 돌린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란의 강경 보수화의 경향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이란의 젊은이들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개혁과 개방의 열정과 신념을 믿는다.
보수파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기갓 주 교수의 투쟁이, 다큐멘터리스트 손볼의 작업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거리를 메우는 다양한 패션의 히잡은 이란의 미래이고 힘이다. 중동의 많은 나라가 외압과 전쟁에 의해 닫힌 사회의 빗장을 열고 있는 요즘, 이란만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믿는 이유 역시 그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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