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을 찾아 떠난 남도 여성문화 예술체험

해마다 6월이면 한 무리의 여성들이 해남으로 여행을 떠난다. 14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남군 삼송면 송정리를 찾는 여성들, 91년 44세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해남을 찾은 사람들은 다른 해와 달리 특별했다. 매년 고정희 추모제를 진행했던 (사)또하나의문화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부대행사로 ‘고정희 시인을 중심으로 한 남도의 여성문화 예술체험’을 마련했다.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여성학대회에 참여했던 미국, 호주, 일본, 인도 등 세계 각국의 여성들과 일반 참가자 등 38명이 남도의 여성문화유산과 볼거리, 먹을거리를 함께 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최이윤정 또하나의문화 사무국장은 “2001년 고정희 10주기 이후 지역적으로 그를 추모하는 조직들이 생겨났고 2004년부터 대안적인 여성문화 테마관광코스로 개발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여행은 제9차 여성학대회를 맞아 국제적으로 고정희를 알리기 위한 실험”이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 목적지인 전남 진도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문화해설사가 구성지게 뽑는 ‘진도아리랑’을 함께 합창하며 여행이 시작됐다.
달마산 중턱에 자리잡은 미황사로 자리를 옮겨 해남 지역의 여성활동가 그룹인 ‘해남 여성의 소리’와 함께 황토와 홍화를 이용한 자연염색 체험이 진행됐다. 이 곳에서 2001년부터 ‘소녀들의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고정희 추모제에 참여해온 하자센터의 여성 청소년들과 합류했다. 이들이 6월 9일부터 진행해온 ‘아시아 소녀들의 디스토리 페스티벌’의 마지막 밤 행사인 ‘노을축제’는 한국·일본·말레이시아의 영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마련한 새로운 여성주의 문화행사였다.
디스토리 페스티벌을 기획한 김희옥 하자센터 기획부장은 “2001년 추모제 준비를 하던 하자센터의 16∼18세의 여학생들이 고정희의 시를 읽으며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면서 “20대가 된 그들이 고정희의 영향을 받아 디지털 세대를 위한 여성 백일장으로 준비한 페스티벌”이라고 소개했다.
27일 이들은 함께 시인의 생가와 묘소를 방문해 추모제를 지냈다. 10대 소녀부터 60대까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여성들이 절을 하고 술을 따르며 자기 나름대로 시인을 추모했다. 
“14년째 이곳을 찾아왔지만 친구들과 오던 때와 달리 대부분 초면인 사람들과 함께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제 고정희가 생전 친구들의 품을 떠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시인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생전 시인의 절친한 친구였던 박혜란 여성학자(본지 편집위원장)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의 소감을 밝혔다.
이번 여행에서 ‘고정희와 해남’을 주제로 글을 쓰고 스토리 텔러로 참여한 김현아 작가는 “고정희의 시는 물리적 나이와는 반비례하며 점점 더 젊어진다”면서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그리워진다”며 시인을 추억했다.
풍물패의 신명나는 가락과 민요가 어우러진 추모제는 모든 참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부르며 무덤 주위를 도는 한바탕 춤으로 끝을 맺었다.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케네디씨는 이번 여행에 대해 “10대 소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페미니스트를 만나며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요즘 페미니즘이 상업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순수하게 활동하는 지역 여성운동가들이나 영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노인과 장애인 등 불편한 사람을 위한 여행사 ‘타비토피아’를 운영 중인 시마모 게이코씨는 “나처럼 대안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다”면서 “여성들을 위한 여행상품을 꼭 기획하겠다”고 말했다.
촉박한 일정으로 깊이 있는 여행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혼자서 여행에 참여한 지우씨는 “20대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고정희 시인을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해 참여했다”면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거두려는 욕심으로 여성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