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니메일] (80)

감동이란 참 묘한 것이다. 미리 잔뜩 기대한 곳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입을 통해서 감동적이란 평가를 받은 영화를 뒤늦게 볼 경우 오히려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결말을 알고 보는 공포영화는 아무런 재미가 없듯이.

한낮의 찌는 무더위가 꼬리를 내린 지난 일요일 밤,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 한 경희궁 옛터에서 나는 예기치 않은 감동의 물결에 휩싸여 한동안 ‘몸’을 떨었다. 처음엔 가슴이 차 오르더니 이내 눈물이 고이고 드디어 문자 그대로 몸이 떨려 왔다.

그날 그 저녁 그곳에서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의 전야제가 열리고 있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달려온 2000여 명의 여성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솔직히 글로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잘도 까발리는 뻔순이지만 사람마다 괴상한 구석이 꼭 한 가지씩은 있는 법이라 이렇게 제법 넉살좋아 보이는 나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딱 질색이다. 그러니 무슨 개막식이니 폐막식이니 신년하례식이니 하는, 시끌벅적한 곳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 글쎄, 누구 말대로 어디서나 ‘섬바디(somebody)’여야지, ‘노바디(nobody)’는 결코 참을 수 없는 공주병 환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평소의 증세를 보면 공주병이 아니라 하녀병이 틀림없는데…. 아무튼 전야제 참석은 원래 나의 스케줄에 없었다. 대회를 준비하느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나와 가깝건 안 가깝건 하나같이 정말 멋진 여성들이다-이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해온 바이지만 ‘여성학자’라는 직함을 가진 나는 그저 멀리서 축하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전야제를 앞둔 바로 이틀 전 여성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전야제에 참석하기로 한 김효선 대표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었으니 대타로 가줄 수 있겠느냐고. 대회에 맞추어 창간 17년 만에 처음으로 영자판도 만들었는데 대표가 그 현장에 없는 건 섭섭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역시 나의 하녀병은 금세 도졌다. 음,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개인적 선호쯤이야. 그렇게 되어 6월 19일 밤 나는 경희궁에 갔다. 초입에서부터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조금은 처졌던 기분이 확 풀어졌다. 생전 처음 만나는 외국 여성들도 눈을 맞추며 미소를 나누었다. 게다가 바람은 산들산들 불고, 서울 한복판의 공기는 청량하게까지 느껴졌다.

옥에 티랄까. 저녁을 내는 서울시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여성신문 영자판을 나눠주는 일을 한사코 말렸단다. 광고 전단도 아닌데 그렇게 말리다니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내 생각엔 ‘못 말리는 권위주의’로밖엔 안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상차림이 지나치게 풍요로웠던 점도 마음에 걸렸다. 접대하는 측에서야 가능한 한 잘 차리고 싶었겠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던 친구들은 공연히 눈치가 보였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먹는 걸 꽤 밝히는 축에 속하는 나도 야 이건 좀 넘치는데 싶었다. 사실 누군가가 호기심으로 그런 데선 뭘 먹나요 하고 묻기에 자신 있게 대답해 줬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먹는 데 호사 안 부려요, 아마 김밥이나 샌드위치 정도? 거기다 떡과 과일 정도일 걸요.

하지만 이런 찜찜함들은 식사가 끝날 즈음 무대에 일단의 춤꾼들이 올라오자마자 눈 녹듯 사라졌다. 화면에 비치는 춤꾼의 표정이 어딘가 다르다 싶더니 이내 휠체어를 탄 무용수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생동감 넘치는 그 몸짓.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장면. 참석자들의 가슴은 감동의 물결로 출렁였고 그 파도는 이내 온 몸으로 퍼졌다.

결국 모두들 무대에 뛰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함께 ‘댄싱 퀸’에 맞춰 댄싱 퀸이 되었다. 무대가 주저앉을 정도로 몸을 흔들었다. 보름을 이틀이나 남겼는데도 달은 휘영청 밝았다. 한 외국인 참가자가 그랬단다. 너희는 달까지 가져왔니라고. 이게 바로 여성학이야. 모든 경계를 넘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서로 눈을 맞추고 어깨를 겯고 함께 춤추는 지금 이 모습. 이번 세계여성학대회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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