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얼굴 ‘여성 자살’
새 삶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얼굴 ‘여성 자살’
  • 강경란 / 프리랜서 다큐PD
  • 승인 2005.06.24 11:02
  • 수정 2005-06-24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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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란이 만난 지구촌 여성들] (4) 마굴과 마리암
전쟁은 몇 세기를 거슬러 살아가던 아프간 사회를 21세기로 데려왔다. 그 덕택에 사회 전체가, 특히 여성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그것을 아프간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교육 받은 소수 여성들의 몫일 뿐, 대다수 여성들은 여전히 변화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

‘산에서 피는 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마굴’은 12세이다.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 아이는 9세에 결혼했다. 남편은 61세의 농부다. “아이의 부모에게 빌려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갚을 수 없어 아이를 나에게 선물로 줬다. 그러니 마굴은 내 소유다”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물었을 때 ‘고삼’은 아주 강경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이 부모가 빚 대신 아이를 선물로 줬으니 아이는 내 소유” 죄의식 전혀 없어

남편 고삼은 첩첩산중 작은 마을에서 가축을 치며 산다. 첫 부인은 죽고 혼자 살던 그에게 주위에서 마굴을 아내로 데려가라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특히 마굴의 아버지가 적극적이었다. 마굴의 어머니는 마굴을 낳고 곧 세상을 떴다.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에게서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나고 엄마 없는 마굴은 천덕꾸러기였다. 가난한 아버지는 빚도 갚고 입도 하나 덜 겸 고삼에게 딸을 데려가라고 제의했다. 고삼은 메카로 하지를 다녀오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과 소 일곱 마리와 양 여섯 마리를 주고 마굴을 데려왔다. 아이는 그의 재산이 되었다.

문제는 마굴이었다. 결혼 생활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이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오른손이 굳어 버렸다. 스트레스성 류머티즘. 병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폐렴에다 영양실조까지 겹쳤다. 병원에 누워있던 마굴은 간호하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싫어요!”

“왜 그러니? 너에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내가 물었을 때 마굴은 열두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너무 늙어서 싫어요”

이 아이가 결혼이 뭔지, 남자가 뭔지나 알 것인가….

나는 취재고 뭐고 다 버리고 고삼을 몰아붙였다. “대체 당신이 사람이냐, 어떻게 손녀 같은 아이와 결혼할 생각을 했느냐, 당신 눈에는 이 아이가 여자로 보이느냐…” 그 늙은 농부는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전후 개방에 따른 문화충격의 후유증으로 자살 급증…갈등 풀기보다 죽음 택해

고삼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배우지 못해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본 것이 없어 자신이 살아온 세상 외 다른 세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 뿐. 아프간에선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여자와 결혼하고,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가족의 결정에 따라 팔려가듯 시집가는 강제 결혼이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아버지들이 그래왔고 이웃들이 그러고 있기에 아홉 살 어린 아이를 아내로 맞는 것이 나쁘다고 고삼은 느끼지 않는다. 그에게 마굴과의 결혼은 익숙한 관습이었다.

아프간에선 요즘 여성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원인은 강제 결혼, 남편의 폭력, 빈곤 등 수없이 많다. 이전에도 강제로 시집을 가고 남편에게 구타 당하는 여성들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왜 요즘 들어 자살이 늘어나는 걸까. 나는 그것이 문화충격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쟁으로 열어젖혀진 국경을 넘어 홍수처럼 밀려오는 외국 문화들, 24시간 낯뜨거운 뮤직비디오와 섹스영화와 음악을 쏟아내는 케이블 방송과 라디오. 닫힌 세상에서 갇혀 살았던 아프간의 여성들 앞에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열렸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저런 삶도 있었구나, 나는 왜 저들처럼 살지 못할까…’ 갈등은 커져 가는데 풀 방법은 없고, 그래서 많은 여성이 자살을 선택한다.

여성 자살은 집안 망신, 통계조차 없어…목숨 건져도 홀로 서기엔 수많은 장애

22세의 마리암은 석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과 가슴 등 전신에 55%의 화상을 입었다. 원인은 남편의 폭력이었다. 일자리 없이 몇 년을 지낸 남편은 그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욕설을 퍼붓고 때렸다. 결혼 후 해마다 아이 하나를 임신하고 출산해 온 마리암에겐 남편의 매질을 이겨낼 육체적, 정신적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그녀를 도와 줄 가족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 분신자살을 선택했다.

집안 일이 밖에 알려지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아프간 사회에서 여성의 자살은 언제나 쉬쉬하는 비밀이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자살을 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단지 분신처럼 극단적인 자살의 경우 대부분 병원으로 실려 오기 때문에 그 수가 어느 정도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마리암이 살고 있는 헤랏 지역에서만 지난 한 해 동안 234명이 분신을 시도했다. 그 중 8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몸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죽는 것만이 방법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더 이상 남편에게 매달려 살지 않겠습니다. 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마리암은 회복실에 누워 남편과 헤어져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했다. 대체 어떻게? 나는 튀어나오는 질문을 꾹 참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남편을 떠난 마리암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혼녀라는 딱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뭘 먹고 살 것인가? 자식이 셋이나 딸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프간에선 많지 않다. 마리암도 자신이 꿈꾸는 미래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그것이 분신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런 일임을 알기에 그녀는 그토록 간절히 새 삶을 소망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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