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자 칼럼

남성이 절대다수인 대학교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은 어느 여교수로부터 들은 지적이다. 요즘 어느 조직에서나 원하든 원치 않든 여성들을 포함시키는 게 대세이지만 그래도 남성들에게 ‘환영’ 받으려면 일단 언제나 부드럽고 친절해 ‘협조가 잘 되는 여성’, 더 나아가 능력까지 갖춰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성’이어야 한단다. 그런데 이런 여성이 야심이 없다면 그 여성은 ‘환상적인 여자’란다.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눈에 띄게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높은 위치로 올라가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환상적인 여자’가 아닌 ‘위협적인 여자’로 비쳐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인데, 맞는 말인 듯하다. 리더로서의 능력 있는 여성들은 때가 될 때까지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철저히 부드러움 속에 감추고 ‘환상적인 여자’인 척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다.

과학분야가 원래 세밀한 부분까지 잘 ‘따져야’ 하는 학문인지라 남녀를 떠나 과학자라면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남성들한테 따지지 말고 고분고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누가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남성들은 공격적이거나 야망이 있다고 알려져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정반대의 ‘별난’ 남성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여성을 능가하는 부드러움과 심지어 페미니스트적 성향이 오히려 존중되기도 한다.

여성과학기술계의 여러 현안 중 급한 문제는 취업과 함께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다. 현재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학률 및 졸업률은 거의 50%를 육박하는 수준이나, 취업 현장에서의 여성은 아직 소수이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여성 취업을 많이 시킨다 해도 현재와 같은 철저한 남성 친화적 환경에서는 여성들이 경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며 중도 탈락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계를 양성 친화적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 필요한 현실이다. 그러나 지도력이 있거나 리더로서의 자질이 보이는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리더로서 성장하지 못한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불공평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성 능력 활용이 선진국 진입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조직의 리더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 많은 여성이 ‘환상적인 여자’로 위장, 자신의 능력을 감추는 대신 여성들의 장점과 리더십이 적극 장려되고 활용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능력을 개발한다면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되리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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